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영의 Oct 25. 2024

13. Mr. 변의 허생전1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부자다. 번화한 운종가로 나아가 시장 사람들을 붙잡고 한양에서 가장 누가 가장 큰 부자냐고 물으면 내 이름을 들출 것이다. 나를 모르면 이 시장에서 돈을 벌 능력이 없는 자이다. 누군가가 변씨라고 말해주어서 왔단다. 허생의 말로는 그렇다. 허생은 들어오자마자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길게 읍을 했다. 마치 검으로 찌르기 직전처럼 깊게 숨을 빨아들이고는 그 숨을 뱉어내며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한데 조그마한 일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 있으니 그대에게 돈 만 금을 빌릴까 하오“

”그럽시다“ 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만 금을 내어주었다. 

물론 내가 지갑에서 만 금을 꺼내어 줬다는 뜻은 아니다. 사냥개처럼 내 곁을 주의깊게 지키는 비서를 불렀을 뿐이다. 만 금을 어떻게 내주었느냐고? 한양 최고의 갑부인 나 변씨가 상평통보 한 꿰미, 두 꿰미 이렇게 내주었다고 지레짐작했을까 봐 덧붙인다. 줄 수 있는 만 금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이지 그걸 어떻게 줬는지가 왜 문제인가? 그대가 여태 가난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호기심과 에너지를 돈이 안 되는 것에만 죄다 흩뿌리다가 정작 기회의 여신이 다가오는 순간에는 놓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18세기 조선에서도 어음이 사용되었음을 귀뜸해 두겠다. 주로 고액 거래를 할 때 어음을 선호했다. 

허생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어음을 받았다. 마치 고액의 어음 같은 건 노상 만져봐 버릇했다는 듯 휙 받아 들더니 곧장 나가 버렸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어안이 벙벙하여 ‘이거 뭥미, 이거 실화?’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면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왁자지껄 따져 묻기 시작했다. 

”저 사람 아세요?“

”모르네“

”아니, 지금 일면식도 없는 자에게 만금을 함부로 던져 버리시고도 그 이름조차 묻지 않으세요? 대체 이게 무슨 영문입니까?“

”너희는 모른다. 남에게 무엇을 빌리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 뜻을 떠벌리지. 먼저 신용을 자랑하되, 그 안색은 비굴하고 말은 중언부언하는 법이지. 그런데 그 손님은 행색은 꾀죄죄한데 하는 말은 간단하고 눈빛은 오만하며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러니 재물에 만족하는 속물이 아닌 그가 시험하려는 게 작은 일이 아니듯, 나도 그에게 시험할 게 있네. 안 주면 그만이되 이미 줬으니 이름을 물어 뭐하겠는가?“


서너 달 만에 시장에서 과일이 사라지고 있었다. 조선은 다른 건 몰라도 사철 내내 과일이 나오는 축복받은 나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잔치고 제사이고 간에 과일이 없어 홍동백서는 꿈도 못 꾸는 상차림이 되어버렸다., 제사 상차림으로 예의범절을 겨루는 양반님네들은 한순간에 조상 낯을 뵈올 면목을 잃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제삿밥을 못 먹어 굶주린 귀신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러니 과일이 다시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값이 껑충 뛰었다. 얼마 전에는 과일 값을 시세보다 두 배로 쳐준다니 청과상(靑果商)들이 안성으로 몰려들었다. 이제는 그 열 배 값으로라도 과일을 사러 다시 안성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경기도의 맨 마지막 남쪽 그리고 충청도가 시작하는 곳 안성이다. 한반도의 한 가운데에 자리도 참 절묘하게 잡았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지만, 돈을 쌓아두고 과일 장사를 한다니 나라가 휘청거리거나 말거나 돈 놓고 돈 먹기라,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사랑방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있어도 다 내 귀에 들어왔다. 


그런데 한 일 년 그러더니 하루아침에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데서 폭탄이 터지고 있었다. 제주도였다. 말총을 누군가가 사재기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얼마 있지 않아 나라 안의 망건 값이 열 배로 치솟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치고 탄복했다. 과일에 이어 말총을 선정한 그놈의 안목이 탁월하구나. 과일은 저장고가 충분하지 않으면 금방 상하는 생물이다. 모르긴 몰라도 샀던 물건의 절반은 썩었거나 남들에게 거저 주어야 했을 것이다. 열 배로 사들였다 해도 두 배로 산 것에다가, 인건비며 창고 보관비 등을 제하면 엄청난 이문이 남는 일은 아니었으리라. 말총이라면 상하지 않는 물건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고 이문은 제대로 손아귀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거, 이거 홍길동, 임꺽정이 따로 없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 아니야?


그렇게 한 일 년 그러더니 나라 안의 칼 든 사내들이 싸그리 없어졌다. 온 나라가 태평해졌다. 소문으로는 제주도 서쪽으로 사흘 거리에 빈 섬이 있는데, 도적 사내들과 그 계집들이 다 그곳으로 옮겨 갔단다. 천 쌍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짓는다나. 농사가 얼마나 잘 되던지 삼 년 내내 풍년을 만났더란다. 그렇게 얻은 곡식 중에서 삼 년 먹을 식량은 남기고 나머지를 장기도에 싣고 갔더란다. 장기도는 때마침 흉년을 만나 곡식을 원없이 팔 수 있었으니, 은 백만 냥을 얻었더란다. 그 두목이 절반인 오십만 냥은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그 길로 뭍으로 나와 나라 안을 두루 다니며 돈을 물 쓰듯 했단다. 나랏님도 구제를 못하는 가난을 무슨 수로 구제하겠다고, 그 아까운 돈으로 하릴 없이 빈민을 구제했다나 어쩐다나, 그놈 참, 돈 한번 오지게 썼다. 그렇게 돈 쓰기도 지치고 싫증이 날 때쯤 십만 냥이 남았단다. 그 십만 냥을 보고서야 돈 갚을 생각이 나서 내 집을 찾았단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허생은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나 알아 보겠소?“

”그대의 안색이 여전한 걸 보니 혹 만금을 다 털어먹었소?“ 깜짝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말이 푹 나와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이 들어오면 별별 미친 짓을 저지르느라 소문에 발이 달리기 일쑤다. 어떻게 얼굴색이 그대로일 수가 있겠는가? 화장품 하나라도 바르고 쌀밥에 고깃국에 얼굴에 윤기가 좌르르 돌게 마련이건만, 어떻게 된 화상이 맑은 콧물이 훌쩍거리던 안색 그대로인가. 게다가 그 꾀죄죄한 옷차림은 컨셉인가, 그 모습 그대로 오 년 세월을 지냈다는 것 자체가 사람이 늙지 않는다는 말이니 똑같지 않나. 허생이 훌쩍 콧물을 들이마시며 웃었다. 

“재물이 있어 안색이 훤해지는 거야 장사치의 일이오. 만 금이 어찌 사람의 도를 윤택하게 하겠소?” 그는 어음을 꺼내어 내밀었다. 

“내가 잠시 굶주림을 참지 못하여 책 읽기를 끝내지 못했소. 그대에게 만금을 빌린 것이 부끄럽구려” 상거지 차림으로 만 금을 껌 값처럼 빌리면서도 나직하던 그의 말끝이 문득 흐려진 것도 나는 느끼지 못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눈앞이 아찔했기 때문이다. 종이부터 만져보고 서명 날인한 필적을 뚫어져라 들여다 봤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틀림없는 어음이다. 십만 냥짜리다. 깜짝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그 앞에 큰절부터 했다. 부모님 돌아가신 이래 누구 앞에서 무릎을 꿇은 건 이게 처음이다. 양반들은 벼슬 높은 게 어른이고 상것들은 나이 먹은 게 어른이지만 부자는 돈 많은 게 어른이다. 십만 냥을 다 받을 수 없으니 십 분의 일만 이자로 쳐서 받겠다고 했다. 허생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당신이 나를 장사꾼으로 취급하려는 거요?”

하고는 옷자락을 뿌리치고는 휙 가버렸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허생에게 십만 냥을 돌려주려고 애를 썼다. 그의 뒤를 밟아 집을 확인했다. 이튿날 은자를 가져가 한번 더 돌려주었다 그러나 허생은 여전히 사양하고 요지부동으로 맘을 바꾸지 않았다. 백방으로 달랬지만 안 받겠다는데 억지로 줄 수도 없지 않은가. 이때쯤이면 허생이라는 이 이인(異人)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강호에는 숨은 고수가 많다.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한 이 이인을 내가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나는 그가 바라는 대로 그의 양식과 옷가지가 떨어질 때를 헤아렸다가 직접 찾아와 가져다주었다. 하인을 시켜도 되는 일이지만, 무엇으로도 비위를 맞추어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없는 자에게는 성의를 보여야 그 맘을 살 수 있다. 이따금 조금 더 많이 가져가 보기도 했는데 허생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재앙을 주느냐고 언짢은 소리를 했다. 한양 최고의 부자인 내가, 주고도 욕을 먹었다. 더 준다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이런 놈은 내 평생 처음 봤다.  


그런데 술을 가져가면 기뻐했다. 서로 권커니 잣거니 하며 취하도록 마셨다. 몇 년을 이렇게 지내자 정분이 날로 두터워졌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레 그가 치부한 방법을 물었고 허생도 스스럼없이 술술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것이야 아주 쉬운 일이오.”

듣자마자 나는 기가 막혔다. 쉬운 일이라고?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해봐라. 맞아 죽을 것이다. 어디 어찌하여 쉬운 일인지 한번 들어나 보자. 

“조선은 배가 외국으로 통하지 못하고 수레가 나라 안을 다니지 못하여 모든 물품이 그 안에서 생산되고 그 안에서 소비됩니다. 만 금으로 물건을 모조리 사재기할 수 있으니 수레에 있는 것은 수레 전부를, 배에 있는 것은 배 전부를, 한 고을에 있는 것은 고을 전부를, 촘촘한 그물로 모두 훑어내듯 싹쓸이할 수가 있지요. 뭍에서 생산되는 만 가지 물건 중에서 한 가지를 몰래 사재기하고, 바다의 만 가지 어족 중에서 한 가지를 슬며시 사재기하고, 약재 만 가지 중에서 하나를 몰래 독점하면 그 한 가지 물건이 남몰래 잠겨있는 동안 모든 장사치의 물건이 말라 버리지요.” 


그러면서도 이 방법은 사람을 해치는 길이니 이걸 써먹으면 나라가 병든다고 경고했다. 본인이 이 방법을 써먹은 장본인임은 잊었단 말인가? 그러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허생이 독점한 물품들은 서민의 살림살이에는 아무 피해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서민들이야 과일이나 말총 값이 오르던 말든 상관이 없다, 농사꾼에게서 과일을 두 배로 사들여 해마다 제사를 열 번도 드리는 양반님네에게 열 배를 받고 팔며 말똥깨나 주무르는 상것한테서 말총을 사들여 망건깨나 쓰는 양반님에게 열 배를 얹어 파니, 제사도 못 드리고 망건도 못 쓰는 백성들이야 마음속으로 오호 쾌재라, 환호를 올리지 않았겠는가. 그것까지 염두에 두었던 말인가, 나는 점점 이 정체 모를 남자의 끝이 어디인가 두려워졌다. 


나의 예측대로 그의 오 년은 과일 장사로 일 년, 말총 장사로 일 년 그리고 섬에서 농사지으며 지낸 삼 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그의 부의 절반이 일본 곧 장기도에서 얻어진 것도 알았다. 일만 가구가 살며 나라 안의 부가 다 모이는 저수지와 같은 한양 도성에서 한때 우리 가문이 이자놀이를 하던 총 액수가 오십만 냥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조선이 그의 백만 냥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다. 내친김에 나는 내가 돈 꾸어줄 줄은 어떻게 알았냐고도 물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