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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홍수 이후

by 정영의

속에 얹힌 체기(滯氣)를

모조리 휩쓸어가는

도도한 흙탕물 앞에

누군들 별 수 있나


질기디 질긴 잡초들은

납작 알아서 엎드리고

지난밤 폭우의 흔적들은

잊히지 않는 악몽


물이 빠진 제 집의

높아진 지붕에 서서

먹이에도 입맛 안 도는

얼이 빠진 어미소는


외양간에 갇혀 숨진

제 새끼의 모습을 보고

무거운 걸음을

비칠비칠 옮겼다


비 오는 하늘을

막고 서지는 못해도

와보아야 마음이 편한

늙은 아들이 아내를 끌고


노모(老母)를 찾아온,

널어둔 양파들이 둥둥 뜨던

고향집 마당 남은 물기는

물먹은 신문지가 마저 말렸다.


물어뜯은 허연 이빨을

영악하게 감추고

졸졸졸졸 명랑하게

노래하는 천변에선


이국(異國)의 스무 살짜리들이

팔씨름을 겨루며

다가오는 태풍뉴스에도

깔깔깔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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