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 you marry me
결혼은 결혼이 우스워 보이지
않을 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도록 아무도
강요하지 않을 때 가장
솔깃하게 들리는 것이
결혼 인지도 모른다.
떠나는 쪽이라서
아쉬워서
남을 방법을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착각했다.
나의 서사적 자아는
현재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나 이외의 타인은
나의 서사적 자아를 살지
않았기에
나에게 있어서
그가 얼마나 중요해야 하는
존재인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의 단가는
바로 그 타인에게
“결국에는 없이도 살 수 있어야 하는”
값을 가졌다.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와 개념을
납득해야 하기 이전에
어떤 사람들은
같이 존재하기로 결정된다.
꼭 같은 시공간이 아니라도.
그렇게 떨어질 수가 없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리하여 헤어져야 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happy together도 있지만
Happy aparted가
인간이라는 개체의 속성을
더 잘 나타내는지도 몰랐다.
사실 저 둘 사이의
합의되지 않은 균형이
더 크게 실존적 만족에
기여하겠지만.
결혼이라는 서류 없이도
사랑할 수 있었던 경험이
내 기억에 거주하는 한
혼자서 굳이 살아야 한다면
살아내야 하는 시공간이
어쩌면
덜 추울지도 모르는 팩트와는 무관하게
떠나야 하는 나와 다르게
그와 앞으로 “부득이하게 같이”
살아야 할 “특정 다수”에게
비이성적인
질투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안 괜찮은데
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사로잡히기 전에
옆에서 말 걸어오는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답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심한 환멸을 느끼면서
식빵에 누텔라를 바르고 있었다.
나 없이 잘 살 수 있는
나 없이 잘 살아야 하는
저 사람을 보니까
진짜 없어져야 될 것 같은
기분에서 아주 오래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렇게 떠나면
떠난 대로
각자의 시공간에 상주하게 될
2020년 어느 월, 어느 일
을 심각하게 두려워하며
메스꺼워야 하는 지금을
멀쩡한 척 살아야 한다는 게
안 메스껍지 않은
금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