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를 선택했다고.
나를 살려낼 목적으로
떠난 시간과 공간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할 정도로
온전하지 않은
심장의 부스러기를 겨우 모아서
비행기를 탔고,
아무 “덧”도 없는
시공간에서
어떻게든
그전에 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서른 살을 살리기 위해
탄 기차였다.
또 누구를
사랑해버리는 바람에
겨우 스카치테이프 한 심장을
이제는 박살내야 할 것을
알아야 하는 것만큼
억울한 건 없었다.
같이 살아야 하는 시공간은
그래도 내일 봐야 하는 장-단점을
동시에 주는 방식으로
긴장과 불편 사이에서
살게 했다.
그러나 같이 산다는
이득 중 하나는 서로를 깊게 알 수 있는
방식으로
더 깊이 알게 하지도
덜 알 수도 없는
간극에 갇히게 한다.
너라서 사랑한 건지
같이 살아야 하는 상황 때문에
널 사랑해야 되었던 건지
헷갈려서
더 잡을 수도 덜 잡을 수도 없는
네 손을 더 잡을 수가 없었다.
사랑
해도 되는데
젊은 두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는 사랑 좀 해도 될 텐데
젊은이들은
그들의 불안한 미래와
미완성인 자존심으로
자아에 벽을 치고 있는 바람에
사랑을 사랑으로 정의하지 못하고
미움을 진심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시간은
반드시
갔고,
나는 이제 같이 사는 프레임을
영원히 탈퇴하는 방식으로
너의 불완전한 타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랑
해도 되는데.
둘이 잘 어울리면서.
그래서 확실히
아는 건
너니까 사랑했다는 것이다.
너라서.
지난 일 년을
너를 알지 못함으로부터 나를 구하기 위해
살았다고.
널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
존재했다고.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비로소
같이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고.
그런데 이제 돌아가면
어쩌지.
함께하는 법은 배운 것 같은데
너만
없네
원래 인생이 그런 거라고 하기엔
너무 아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