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인간을 #회상 하게 두는 것인가
분명 책에서 읽었는데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한 줄이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유는 내가 의심하던 것을 사실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나는 나를 책 한 권을 쓴 사람과 동급 취급을 하려 하는 오만한 상태인 건가.
"인간은 언어로 경험하지 않는다."
결국 경험의 다음 프레임에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언어를 빌려와서 완전히 같은 프레임이 아닌 것을 재구성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 과정에서 누락된 감정이나 사실은 곧 그 차용한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어를 매개로 가까운 타인 혹은 매우 멀리 있는 타인과 잠시나마 억지로라도 같은 프레임에 존재하고자 한다.
어떻게든 내 묵은 감정을 "해소"하려면 나는 말 혹은 글이라도 내뱉어야 할 테니까.
때로는 그 말들이나 글들조차 나를 기만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이미 닫힌 과거를 특정한 문법의 프레임을 빌려 살려내려 할 때마다 나는 새로운 프레임을 기억에 갖다 대는 방식으로 나를 농락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는 와중에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뿌리를 내리고 그들에게 일련의 방식으로 나의 "화려했을지도 모르는" 어제의 환영을 강요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같은 말을 반복할 때마다 귀를 닫아버리는 그들이었지만.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수단이야 어떤 것을 이용하였든, 나는 자꾸 회상하고 있다.
자꾸 지겹도록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그 되풀이한 말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면 혼자 감탄을 하며 나의 작문 실력에 희미한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오로지 내 머릿속에서나 맥락의 흐름에 얼추 들어맞아서 수긍이 가는 모양새일 테지만 말이다.
그 순진한 마법에 찾 미소는 얼마 가지 않아 이미 없는 것들의 환영이 사라지는 순간
내 몸이 현실의 늪 속에 이미 목까지 빠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며
"이미" 없어진다.
없는 것도 없어질 수가 있다. 자꾸 내가 살려내니까.
때로는 이 글들이야 말로 사라져야 할 것들만 같다.
"글을 쓸 줄 앎"은 가져가고, 그동안 잃은 사람들은 지금 내 앞에 데려다 주면 좋겠다.
이 또한 "사후 판단의 오류"가 주는 "걸작"에 얹을 한 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다시, 헤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