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녕로그 Jun 05. 2024

말이 춤을 춘다

헤레스의 전통 알아보기 (1)

말에 올라탄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서도 믿지 못했다. 강남스타일처럼 인간이 추는 말 춤은 봤어도, 진짜 말 춤은 상상조차 못 해봤는데. 헤레스에 있는 세계 4대 왕립 승마학교에서 그것을 진짜 볼 수 있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헤레스의 전통을 만나기 위해 시내 외곽에 있는 승마학교까지 찾아왔다. 가는 길엔 관광객 하나 보이지 않고, 한국엔 잘 알려지지도 않은 문화라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의구심이 가득 들었는데, 그게 무색할 만큼 방문객이 꽤나 있었다. 스페인어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걸 보니 국내여행객의 수요가 많은 듯했지만.


줄을 서서 구매순서를 기다리는 순간까지도 두 개의 마음이 공존했다. 살까, 말까? 


경기장


티켓을 결국 사서 입장했다. 마음 한 구석에 있던 후회는 자리에 앉자마자 사라졌다. 진정한 헤레스의 문화를 보는 것만 같아서. 조명 몇 개가 전부인 소박한 경기장은 이들의 바이브에 꽤나 잘 묻어 나왔다. 


쇼는 스페인 클래식 음악에 맞추어 진행되며, 18세기에서 영감을 얻은 의상들을 입고 나오며, 안무는 클래식 드레사주, 도마 바케라 등 전통적인 무브먼트부터 고급 승마 기술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제자리에서 앞다리를 차며 뛰는 말


조련사들은 소리로 말을 컨트롤한다. 엄청난 훈련이 사소한 순간부터 강하게 느껴졌다. 일사불란하게 정해진 이동동선을 따라 철저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 이곳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쇼가 거듭되면 될수록, 나는 어딘가 모를 기괴함을 느꼈다. 말이 마치 사람이 걷는 듯 걷고, 사뿐사뿐 뛰는 모습이 마치 회전목마 위의 말들 같았다. 무언가 마법에 홀린 듯한 모습이었다.


공연 중간 쯤


이 감정이 극에 달했던 건, 쇼 중간쯤. 가운데 묶인 말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한다. 주변에서 나는 소리에 맞추어서. 이 역시도 포인트는 '우아함과 절도'다. 우리가 평소에 보는 말들의 걸음걸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발레 무대 위 주연이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움직이듯 말은 계속 움직였다. 


말들의 행진


쉬는 시간까지 있을 만큼 쇼는 꽤나 길었다. 1부는 기본적인 행렬과 기술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2부는 보다 기술이 많이 보였고, 그만큼 더 기괴해졌다. 그렇게 내가 느끼는 감정과는 반대로 노래는 경쾌해져만 갔지만. 


사고방식을 완전히 벗어난 이벤트였다. 단순히 걷고 달릴 줄만 안다고 생각했던 말은, 상상 그 이상으로 다양한 것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결국 왕실을 위해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낸 움직임이겠지만.


즐거움과 기괴함이 교차하는 마음에, 묘한 기분으로 쇼 관람을 마쳤다. 그 묘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냥 뭔가 이상하다'는 말로 설명할 뿐. 안달루시아에서 꽤나 유명한 볼거리라고 하니, 그들의 문화의 일부로써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덕분에 헤레스에 대한 인상은 무엇보다 강하게 남았다.


춤을 추는 말. 동화 속 마법에 걸린 말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이전 01화 여행 4주 차에 되찾은 여행의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