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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Jul 31. 2024

스페인에서 진정한 소도시를 찾는다면

현지인도 잘 모르는 도시는 어떨까 - 1

스페인 남부에는 하얀 집으로 모인 도시들이 곳곳에 있다. 대표적인 도시들로는 네르하, 프리힐리아나. 말라가에서 당일치기로 이미 두 차례 방문을 했지만, 나는 이 소도시들로 만족할 수 없었다. 방문한 한국인이 거의 없을 듯한, 진정한 작은 마을을 가고 싶었다.


말라가를 기준으로 서쪽편으로도 하얀 마을이 모여있다. 그곳은 교통편이 불편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아 방문객이 상대적으로 적다. 직접 운전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들이 다수이기도 하고. 


구글에서 이곳 저곳을 클릭해 뚜벅이 여행자가 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출발지가 어디가 됐든 갈 마음이었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색했다. 그렇게 방문하게 된 소도시의 이름은, 바로,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 


무어인의 영향으로 '데 라 프론테라'가 붙었을 뿐, 이름이 어렵진 않다. 근방이 모두 '데 라 프론테라'라는 수식어가 함께 오기 때문에, 줄여서 '아르코스'로 부르기도.



출발지는, 헤레스였다. 헤레스에서 M-902 버스를 타면 30분만에 도착한다. 가깝고, 이동 방법은 단순했지만, 이 날은 사실 성목요일, Maundy Thursday. 스페인 내 중요한 공휴일 중 하나로, 마을 곳곳의 상점이 영업 시간을 단축하거나 문을 닫는 등, 인터넷에서 파악하기 힘든 변수가 너무 많은 날이었다. 이후로 며칠 휴일이 이어지기 때문에 선택지가 없던 나는, 이동을 감행했다.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 교통 Tip.

Monbus의 M-951, M-902, M-903, M-953 등 헤레스와 아르코스 사이의 버스는 생각보다 많다. 그래도 교통편이 자주 있지는 않는 편이기에, 미리 터미널에서 알아보고 티켓 사는 것을 추천한다. 갈 때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편도 미리 물어보고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요일 및 일요일, 공휴일에 교통편이 현저히 줄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평일에 가는 것이 좋다. 가격은 2.05유로 (2022년 기준)



푸르른 하늘 아래 제주 오름이 생각나는 풍경을 한참 보며 달리니, 어느새 도착했다.


아르코스 버스터미널은 관광지라고 말하기엔 믿을 수 없을만큼 작았다. 최소한의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함께 내리는 사람도,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사람이 있을 법한 티켓 창구도 문이 닫힌 상태. 오가는 사람이 드문 시골마을 버스터미널 같았다. 그것도 깡시골.


무엇보다 돌아가는 길이 걱정됐다. 버스가 언제오는지 정확하게 다시 확인할 수도 없었고, 티켓을 사는 곳을 알 수도 없었기 때문. 나는 이제 집에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걱정을 뒤로 하고 시내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버스터미널 앞은 당황스러울만큼 자연이었다. 마을이 있을거라곤 생각지도 못할 만큼, 그저 드넓은 평원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건물도 없으니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다. 한참을 서성이다 눈 앞에 나타난 현지인의 뒤를 밟아 쫓아갔다.


그렇게 얼마 걸으니 잘 가꿔진 길이 하나 나왔다. 마치 산행을 하듯 위아래를 오가고, 다리를 건넜다. 계속 발걸음을 떼면서도 속으론 생각했다. '이 길이 맞는 걸까?',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속는 셈치고 계속 걷다보니 마을이 눈앞에 나타났다. 비교적 넓은 도로에 비해 사람은 거의 없고, 볼 거 없는 조용한 거주지 같았지만, 노점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니, 안심이 되더라. 지금까지 본 마을과 어딘가 다른 느낌이 나니 벌써부터 흥미로웠다.



네르하, 프리힐리아나, 미하스를 여행하며 많이 봤던 하얀 벽의 아기자기한 꽃은 이곳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네르하는 바닷가, 프리힐리아나는 언덕, 미하스는 절벽이 강조된 도시라면, 첫인상에서 아르코스는 좁은 골목이 가장 강조된 도시였다.


천천히 마을의 분위기를 파악하며 안으로 걸어가니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무엇보다 성 목요일을 기념하기 위해 식당 앞에 모여 하루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일상인 듯 자연스레 묻어나는 모습이 딱, 현지인임을 보여주더라. 유독 스스로가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졌지만, 그래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무작정 안으로 한참 걷다 전망대를 발견했다. Mirador de Abades. 드넓은 평원 한가운데 위치한 마을의 특권이랄까? 아주 먼 산등성이까지 파라노마처럼 보이는 뷰를 갖고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소도시 중 소도시 답게 이 환상적인 경치를 갖고 있는 곳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끔은 나 홀로 남겨질 때도 있을 만큼. 풍경을 여유로이 감상하기 위해 벽 위에 걸터 앉았다. 차분하게 주변의 소리에, 그리고 평화로운 풍경에 집중했다. 


산 능선을 따라 넓게 깔린 낮은 구름과 푸른 하늘, 그리고 따스한 햇살. 황색과 녹색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평원까지. 그런 자연을 주변의 방해 없이 조용히 앉아 구경하고 있는 이 시간.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그늘 한 점 없는 곳이었지만, 전망대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이게 소도시를 계속 찾는 이유다. 특별한 계획 없이 찾아와 경치 좋은 곳에 가만히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비우는 시간이 좋아서. 



여행객이 적은 소도시지만, 밥 먹는 일은 참 어려웠다. 모든 식당이 문이 닫혀있을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특별한 공휴일이라서 그런지, 식당에 사람이 많았던 게 문제. 어떤 식당을 가도 앉을 틈이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빈 테이블은 예약이 되어있었다. 가는 곳마다 Completo (자리 만석) 소리만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밥을 포기하고 길거리 빵이나 먹으려던 찰나에, 우연히 실내가 비어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이상하리만큼 야외와는 달리 텅 비어있던 실내. 야외 좌석을 선호하는 스페인은 실내에서 식사할 경우 응대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지만, 인자한 미소로 반겨주던 웨이터 얼굴에 믿음이 생겨 안으로 향했다. 그는 실내 밖에 없다며 안타깝다는 듯 말을 했지만, 나는 오히려 좋다. 덕분에 담배 냄새도, 강한 햇빛도 피해 실내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까. 



아르코스에서의 식사 메뉴는, 미트볼과 꿀가지튀김. 식당 사장님께 추천을 받아 주문했다. 역시나 스페인스러운 조합이다. 한국의 토마토베이스 미트볼과는 조금 다른 짭짤함이 강조된 Albodnigas caseras. 타파스치고는 꽤나 양이 많았다. 밥이 있으면 더 맛있지 않았을까?


가지는 크림치즈가 올라간 건 처음봤다. 이곳의 특별함이었을까? 치즈 맛이 부담스러워서 조금씩 덜어먹었지만, 위에 뿌려진 칠리소스와 꿀이 잘 잡아주어 맛있었다. 언제나 소도시에서 먹는 추천 메뉴는 큰 실패는 없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다시 정처없이 마을을 탐방했다. 때로는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두렵기도 했지만, 미로 같은 길을 한참 걷는 게 마을에 조금씩 다가가는 거 같아 좋았다. 돌아가는 교통편도 걱정되어서 맛보기만 하고 헤레스로 돌아가려했지만, 나는 그렇게 먼 여정을 떠났다.


버스터미널과는 반대의 길로. 더욱 더 혼자만의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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