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자의 경제 생활, 이게 맞나요.
바로 이거였다. 몇 년 전 육아휴직 때도 어느 시점부턴가 목이 마르고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지. 복직할 때 불안함보다 안도감이 더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휴직을 시작한 이후로도 조금은 의식하고 있었다. 다만 아직은 괜찮다고, 좀 더 나중에 걱정할 일이라며 슬쩍 접어뒀을 뿐이다.
곳간이 비어간다. 샘이 말라간다. 비로소 외면할 수 없는 때가 왔다. 애초에 그리 넉넉한 곳간과 용솟는 샘도 아니었기에 많든 적든 쌀길 물길이 끊기니 곧장 맹추위 황소바람이 분다. 휴직을 한다는 것은 월급쟁이로서 돈 벌기를 멈춘다는 것이니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모르고 시작한 것도 아닌데.
이토록 당연한 수순에 대한 체감이 늦어진 건 회사 제도 덕이다. 초반 몇 개월간 기본급의 몇 퍼센트 수준이 계좌에 들어왔다. 법정 외 휴직 중 리프레쉬 지원이 인기였던 것도 유급기간이라는 이점 때문이었다. 남편은 '너희 회사 참 좋은 회사'라 했다. (다른 더 좋은 회사도 많을텐데.) 다닐 때는 늘 가시 돋친 짱돌이었던 나도, 한 발 떨어진 몸이 되니 그 말에 어깨가 펴진다. 회사 이름으로 찍히는 숫자가 처음부터 완전히 0이 되지는 않아준 덕분에 한동안은 생활비 지출에 불편함이 없었다. 출근하지 않아 줄어드는 지출 영역이 생기니 역시 휴직이 더 경제적이라는 착각도 했다. 그만큼 한동안은, 살 만했다.
예고된 일에도 어째서 가슴은 이리도 쿵 내려앉는가. 계좌에 돈이 들어오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바로 그렇다. 십만원의 아동수당을 제외하고는 파란색 출금 내역만 따박따박 찍힌 앱 화면. 괜히 검지를 몇번 더 아래로 끌어 당겼다 놓으며 새로고침 후 달라지는 것이 있는지 살핀다. 마음이 텅 빈 것 같다. 자꾸만 코가 맵다.
적은 돈이라도 매달 들어오는 것과 전혀 들어오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올해 마침 집 장만 기회가 생겨 묵직한 대출이 생겼고 목돈도 고스란히 나갔다. 지출의 비가 상류의 강물이 되어 밀려왔다. 여러 계좌에 흩어져 있던 소액 잔고들을 끌어모아보지만 소담한 현금자산은 터지는 둑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졸졸 새는 마이너스가 기어코 시작됐다.
물론 남편의 수입이 있다. 올해 내가 휴직을 하니 그도 훨씬 안정적으로 커리어에 집중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가정일과 돌봄을 전담함으로써 다른 쪽에서 아껴지는 돈과 무형의 가치들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따라서 수입에는 나의 공이 포함된다. 즉, 우리 가정 공동의 수입. 이를 알면서도 생활비는 내 계좌에서만 해결하고 싶다는 알량한 자존심이 있었다. 의지하는 듯한 모양새가 마뜩잖았다. 높은 물가와 파도 앞 모래성같은 잔고 덕에 이런 생각 역시 별수없이 쓸려갔지만.
고정비, 공과금 출금건을 남편의 계좌로 돌려놓고 월급일마다 필요한 만큼의 금액을 이체받았다. 맞벌이를 하는 동안은 적게나마 모아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확실히 한쪽의 수입이 사라지니 지출을 충당하는 것만으로 숨이 차다. 모으려면 모을 수는 있겠지. 병아리 눈물 정도는 될 거다.
혹 자산 전문가가 우리 집 사정을 뜯어본다면 줄일 지출이 많은 게 문제이니 수입 탓 하지 말라 할지 모르겠다. 『맞벌이의 함정』 책에서도 그러지 않았던가.
당연히 지출도 줄이려 애쓰는 중이다. 저절로 그리 되는 것들도 있다. 교통비와 의복비는 예상했던 대로고, 교육비도 그렇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돌봄과 놀이의 위탁이 절실하다는 이유로 여러 학원을 보냈다. 대부분의 워킹맘이 그러하듯 내가 봐줄 수 없는 시간을 채워주는 조건이 최우선이다. 휴직 후 막상 아이가 원치 않아 많이 줄이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를 관두며 대안을 찾았다. 그 중 하나는 학원 때문에 오히려 영어를 싫어하게 된 아이와 같이 구립 영어도서관에 가서 책 빌려 노닥일 수 있게 된 것. 실속없이 지불하던 돈을 둘 다에게 더 나은 값으로 바꿨다.
소소한 구매도 줄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어떤 아이템의 도움이라도 받고 싶단 마음으로 샀다. 필요보다 불안을 채워주는 목적이었다. 출퇴근길 또는 회사와 같은 '집 밖'에서 원격으로 할 수 있는 '집 안'일이라고는 온라인 구매 뿐이었기에. 반면 안정적으로 집에 있게 된 이후로는 구매 텀을 한번이라도 더 지연시킬 수 있다. 없으면 안되는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급하지 않기에 다음 날로 미루다보면 결국 불필요한 구매로 판명된다. 예전 글에도 썼듯 신선식품 역시 집 앞의 정육점이나 채소가게를 이용할 수 있다. 새벽배송 주문 가능시간 내 배송 무료 조건을 맞추려 조급하게 더 담던 때와는 다르다. 시간이 있고, 대안이 있어서다.
비슷한 상황의 지인들은 나보다 더 휴직 지원 조건이 잘 맞는데도 손들지 않았다. 어쩌다 계획을 물어보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대출 있어서 돈 벌어야 해."
맞다. 한창 벌어야 할 때다. 나도 대출 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일해 노후까지 대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뒤 안 가린 채 또 한번 브레이크를 밟은 건, 외벌이만으로 풍족한 경제력이어서도, 돌아가기만 하면 계속 벌 수 있는 직업이어서도 아니다. 그저 남편도 나도 지금의 멈춤이 돈 버는 것 이상 가치를 줄 것이란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확신엔 변함이 없지만, 벌지 못하는 불편함과 불안함도 쉬이 외면할 수 없는 대가다.
아무리 지출이 감소한들 수입 감소를 따라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마치 가설을 그대로 따르는 '휴직 실험군'처럼 재차 목이 마르고 쪼그라든다. 가까워지는 복직일에 침울해지면서도 동시에 정반대의 안도감이 자라난다. ‘어쨌든 이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돈을 벌 수 있겠구나, 돈을 벌 수 있단 건 또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하며. 이전 복직 후 첫 월급날, 동기가 '남편에게 설명하거나 눈치보지 않고 값나가는 아이 전집을 주문할 수 있어서 기쁘다.' 했던 말에 공감했었다. 스스로 필요해서 누르는 결제 버튼에 의문이나 주저를 품지 않는 것. 그래, 이 맛에 돈 벌지.
돈이야 다시 벌면 된다. 아직 젊다. 뭔들 해서 못 벌겠는가. 그런데 회사로 돌아간다 한들 얼마나 오래 벌 수 있을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같은 방식으로 계속 벌 수 있기는 한 걸까. 꼭 이 방법이어야만 할까. 근로소득 말고 다른 파이프라인은 언제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사실 휴직을 통해 이 모든 답을 찾고 싶었는데 여전히 작은 단서조차 찾지 못한 걸 보면 과한 기대였나 싶다. 남은 기간동안 대단한 보물을 건져올리거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장식하지 못하더라도 이제는 그저 하루하루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로 채워나가려 한다. 돈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그것이 미래의 나와 가족을 안아줄 어떤 종류의 씨앗이라도 되기를 바라며 말이다.
아, 근데… 하여간 돈이 문제다. (한탄의 도돌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