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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리 Apr 03. 2023

오해로 시작하다

모유수유라는 이상한 좌절

만삭의 배로 분만 예정 병원의 특강을 들으러 갔다. 가족 중 누구라도 함께 들으면 좋다는 말에 남편은 물론 시어머니까지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갔다. 배움의 자세로 각이 잡힌 초산모는 뭐든지 같이 알고 준비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산부인과 전문의는 달고 매운 화법을 번갈아 구사하며 모유수유를 강조했다. 마지막엔 다들 성공하라며 파이팅을 외치게도 했다. 구청 출산교실에서도 어김없이 모유수유에 별표 세 개를 그렸다. 아기와 엄마 모두의 건강과 정서에 좋다니, 이 단순하고 좋은 걸 왜 안 하겠나. 생에 단 한번도 관심 없던 단어에 정복욕이 피어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의를 불태웠다. 스스로를 옥죄인 미래의 서막은 바로 이때 열렸다.


조리원에서도 집에서도 모유수유는 이해할 수 없는 숙제였다. 배운대로 해도 양이 늘지 않았다. 분유나 젖병과 겨룰 마음은 없었다. 오기라 할 만큼 독하지도 않았다. 그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모유가 맛이 없나?”, “산모님이 조금 집착하시는 것 같아요.”라며 원인이 내게 있는 듯 하는 말들에 밤마다 아팠다. 먼저 아이를 키워 본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어려운 것 아니라며 알려 준 방법들이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하란 대로 했는데 유독 나만 예외인 이유가 궁금했다. 육아 커뮤니티에 글을 쓰니 수많은 공감과 조언의 댓글이 달렸다. 비슷한 경험을 그린 웹툰을 발견하고 안정적인 수유를 하게 된 결말에 대리만족하기도 했다. 아이가 잠든 틈에 같이 자야만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기였음에도 쉴 새 없이 정답을 찾아 헤맸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도리어 정반대에 가까운 도움말들이 어지럽게 춤을 추는 터에 나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출산교실 강의를 괜히 들었다. 이제 나는 쉽고 어려운 것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모유수유 전문 마사지 클리닉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번에도 “더 노력하세요 화이팅” 따위의 응원만 듣는 건 아닐까. 실망이 비집고 나오지 않도록 미리 단단히 끌어안았다. 두 번의 방문 동안 여러 가지를 살펴 본 전문가는, 다행스럽게도 나의 노력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기가 먹는 데 관심이 없는 편이네요. 쭉쭉 당겨 먹어줘야 젖이 비고 다시 차면서 양이 늘거든요. 엄마 젖은 문제가 없어요. 아기도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에요. 잘 안 먹는 아기가 있어요. 괜찮아요.” 비로소 체기가 가셨다. 엄마의 노력만으로 적용되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처음 증명받은 듯했다.




예방접종을 위해 소아과에 간 날의 일이다. 문진 시간에 내가 수유와 관련한 질문을 했다. 의사는 화색이 돌며 월령별 체크리스트 따위의 자료를 잔뜩 들고 와 설명을 시작했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열성에 이끌려 사뭇 진지하게 경청했다. “아기가 먹고 싶어할 때 먹이면 돼요.” 라는 말이 나올 때 나는 조금 망설이다 입을 뗐다. “언제 먹고 싶어하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의사는 못 들을 것을 들은 이 마냥 놀라며 반문했다. “아기가 배고픈 신호를 ‘엄마가’ 몰라요?” “네, 헷갈려요” 대답하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손을 빨거나 울음 소리가 조금 다르다거나 그런 것들이 있는 건 저도 아는데요. 우리 아이는 티를 잘 안 내더라고요. 그래서 먹겠지 싶은 시간에 줄 따름입니다. 선생님, 참고서와 다르더라구요. 저도 몰랐어요. 엄마 잘못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제가 엄마가 아닌 것도 아니에요.’ 입학을 앞둘 만큼 많은 날을 함께 한 지금, 나는 우리 아이가 다리 휘는 밥상 차림에도 큰 관심이 없는 편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분유 수유를 병행하며 의외로 오랫동안 모유 수유를 이어갔다.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시점 이후로 서서히 모유 양이 늘었다. 더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스스로 완전하게 받아들이고 관심이 옅어졌을 때부터였다. 아이도 그때쯤 빠는 힘이 더 생겼다. 생후 8개월이 되던 무렵 아이와 떨어져 타지에 머무는 일정이 생겼고 그 김에 단유를 했다. 며칠 젖몸살을 앓기는 했지만, 한때 더 뜨겁고 길게 앓았던 수유의 날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허무하게 끝이 났다.




지금까지도 그 단어를 가볍게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것을 보면 당시의 마음이 참 요란하긴 하였다. 나는 모유수유는 고생스러우니 섣불리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만은 않는 내 경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를 키우며 이보다 더 고생스러운 일은 말할 필요도 없이 허다하다. 다만 내가 되짚어 기억하고 싶은 것은, 첫 발을 내딛은 이에게 앞선 이의 경험과 이론적 도움이 온전히 같은 모습으로만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부모가 알아서 헤맬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족을, 타인을 놓아주길 바란다. 간단히 말해 모유를 먹이라는 말도 분유를 먹이라는 말도 하지 말자. 어떤 당위와 추측도 얹지 말고, 아이와 호흡을 맞추어 갈 숨구멍을 남겨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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