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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리 Aug 12. 2023

아이 곁의 상대성 이론

때로는 억겁의, 때로는 찰나의 시간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까지 우리 둘은 온종일 붙어 지냈다. 아이가 너무 일찍 깬 어느 날이었다. 새벽 대여섯 시 무렵이었던가. 다시 잠들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불씨를 후- 하고 꺼버린 어린 친구는 완벽히 말똥한 눈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애써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 역시 떨쳐 일어났다. 기억 속에 출근 준비하는 남편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 출장을 가 있었나 싶다.


이른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후 함께 놀거리를 찾았다. 인형과 대화를 나누기도, 사운드북의 버튼을 고루 눌러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충분하겠지 싶어 시계를 봤다. 배도 불리고 좀 놀았으니 조금만 더 있으면 낮잠 재우기를 시도하리라 다짐하며.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놀아주기 시작한 이후로 분침이 고작 열 칸 정도 전진해 있었다. 체감 40분은 과장이 맞다 치더라도 10분이라니 이건 너무 쩨쩨하다. 시간의 농간을 분하게 여기며 밀어뒀던 오뚝이 장난감을 다시 앞으로 끌어온다.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육아의 세계에서 흔하고 흔한 일이라 그리 놀랄 건 아니었다.


여름 아침이라 바깥은 진작부터 밝고 더웠다. 목이 몹시 타는데 냉수로 채워지지 않았다.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생각에 목이 아니라 마음이 타는 듯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었다. 집에서 먹는 것 말고 '남타커', 남이 타 주는 커피 말이다. 앞에 놓인 시간에 도무지 자신이 없는 지금 이 순간, 당장.


아이를 힙시트에 앉혀 어깨띠를 맨 뒤 무작정 현관문 밖을 나섰다. 아파트 비탈길을 내려가던 중에야 구체적인 행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나의 활동 시간은 최소 정오에 가깝지만, 한국 표준시는 아직 일곱 시 오십 여 분. 그렇담 여덟 시에 문 여는 카페를 찾아야 했다. 이른 아침의 손님을 맞을 가게는 분명 여기저기에 있을 것이었다. 문제는 그런 곳이 하필 우리 집 근처에 없다는 것. 또, 팔다리를 바둥거리는 아이와 함께 나선 나에게는 그것을 찾는 것이 좀 더 진땀 나는 미션이라는 것.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시작한 것을 후회했다. 시원한 커피를 마실 생각에 경쾌했던 발걸음이 허리와 어깨에 실리는 힙시트의 무게만큼 축축 늘어졌다. 역 근처의 번화가로 나와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시원한 커피 한잔을 들이켠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끌어안고 있는 힙시트 때문에라도 여유나 감상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가게에 왔지만 이제 겨우 여덟 시. 게슴츠레한 맨 얼굴에 아기를 안은 나는 이곳에서 달리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다. 그래, 여기서 뭘 더 하겠는가. 집으로 향하는 길. 다시 오르막길을 걸을 자신이 없어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창 밖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바라보니 나에게만 다르게 소란한 아침과 여정이 문득 머쓱하고 서글퍼졌다. 텅 빈 듯한, 너무나 느린, 그러면서도 너무나 이른 나의 시간.


출산 후 아둥거리던 시절, 먼저 키워본 친구는 '50일이면 좀 나아.'라고 했다.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그때가 되어도 특별히 편해지는 것은 없었다. 따져 묻는 나에게 친구는 다시 '100일이면 진짜 좀 나을 거야. 기다려 봐." 했다. 99일, 99.1일, 99.2일... 야속하게도 100일에도 특별한 기적은 없었다. 육아의 시간이란 그렇게 단계별로 규칙적 팡파르를 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100일, 1년, 말하는 때, 혼자 화장실 가는 때가 언제 올지 동동 기다리며 지내다 보면 갑자기 불쑥 커 있어  ‘제발 천천히 자라 줘!’ 외치게 되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불규칙과 비정률의 시간인 것이다.


물리적 시간과 인지적 시간은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마다, 상황마다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 육아의 세계에서 특히 이런 경험을 수없이 했다. 아이 곁에서 시곗바늘의 속도는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줄어든다. 너울너울 요동치다 타닥타닥 빗줄기가 되기도 한다. 밤잠과 낮잠이 이론대로 되지 않는 돌봄의 세계에서, 내가 자고 싶은 시간은 아이가 자고 싶은 시간과 만나지 못한 채 허공에 갈래갈래 뿌려진다.


너무 길었던 아침. 의지와 상관없이 새벽을 오후처럼 보내고, 이른 아침 문 연 가게를 찾아 동네를 헤매던 시간. 시원하고 볼거리가 있는 대형마트라도 가려 채비하다 아직 먼 오픈시간을 뒤늦게 확인하고 주저앉아 다시 갈 곳을 찾던 시간. 너무 길었던 밤. 재울 때까지 걸렸던 억겁의 시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마음 태우던 긴 긴 시간.


너무 짧았던 밤. 겨우 재운 아이가 깨 버리는 찰나의 시간. 비로소 찾아온 고요를 환영하며 스마트폰을 즐기는 시간. 너무 짧았던 날들. 서툰 걸음마를 떼던 시간. 외계어 같은 말을 오직 나만 알아듣던 시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말 트이기, 기저귀 떼기 따위를 머리 싸매고 고민하던 시간.


그 불규칙한 속도들이 자꾸만 기억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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