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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리 May 13. 2023

몰랐던 세계의 아주 작고 작은 것

발견한 것들의 기록 (1)

영유아 돌봄 영역에서 나는 이미 구세대 엄마다. 당시 화제였던 육아용품은 사라진 것들이 수두룩하다. 경탄할 후임자가 연달아 나와주었기 때문이다. 강산이 변하는 10년인데 이 세계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특히 내가 신생아 육아를 막 끝냈을 무렵에야 분유 자동 제조기가 등장한 사실은 생각만 해도 원통하다. ‘라떼’는 한밤중 악쓰는 울음소리에 뺨 맞는 느낌으로 포트에 물을 끓였단 말이다. 덜 뜬 눈으로 분유를 탄 젖병을 찬물에 담그고 수십 번 흔들며 제발 빨리 식어달라 애원했단 말이다. 쓰고 보니 분유나 포트조차 없었을 과거 어머니들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그 시절의 시시콜콜한 발견과 깨달음들을 쓰려 한다. 이토록 다르게 멀어진 때인데도 구태여 기록하려는 이유가 있다. 상상과 전혀 다른 문이 열린,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장면과 감정에 바짝 붙을 여력이 없었다. 꼬깃하게 접어 어느 귀퉁이에 뒤죽박죽 욱여넣었다. 그래서 해상도가 낮은 화면이다. 흐릿하고 투박한 모서리다. 그렇게 남은 것들을 이제라도 꺼내어 잘 개어두고 싶은 것이다. 즉, 잊지 않고자 쓴다. 또는 아예 잊어버리고자 쓴다. 아이 하나 키우는 게 별난 일인 양 언제까지나 ‘그때 참 그랬지’ 할 수 없다. 펼쳐지는 앞의 삶을 편히 내딛기 위해 접어놓은 한때의 마음을 꺼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


작은 아이 하나가 열어젖힌 문 너머의 세상은 느낌표의 연속이다. 들어서자마자 그간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아, 그래서 그랬던 거야?” 탄식과 함께 귓가에 종소리가 댕댕 울린다. 동서고금 부모들이 말하는 ‘너 같은 아들 딸 꼭 낳아서 키워봐라.’의 의도가 꼭 들어맞는 때이기도 하다. 갸웃했던 유모차 행렬과 부모들의 표정, 무심했던 시장경제와 사소한 단어 하나하나가 절절히 이해되는 나날이다. 낮은 출산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진지하기 전에 아주 작은 생활의 발견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너무 사소해서 놀라지 마시라. 주인공은 건전지다. 이 세계의 양육자들은 반드시 건전지를 대량으로 구비해 두어야 한다. 바닥에 차고 밟히는 크고 작은 장난감은 아무리 전력을 넣어줘도 배가 차지 않는 요물이기 때문이다. 건전지의 수명이 그렇게 짧은지도 전에는 몰랐다. 물 먹는 하마 또는 밑 빠진 독과 같다. C타입, D타입까지 처음 알고야 마는 상황에서 업계가 규격을 좀 통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더불어 인생에서 동물 이름을 이렇게 많이 불러 볼 때가 있는가를 생각한다. 나의 어릴 때야 기억에 없으니 모를 일이다. 적어도 인지를 하게 된 나이 이후로, 사자, 코끼리, 원숭이, 얼룩소라는 단어를 이렇게 입에 많이 올려볼 일이 더 있을까. 어흥, 뿌우, 끼이, 음메 소리 짝 맞추기에 이렇게 숙고한 적이 있었는가.


뿌듯한 발견의 경험도 있다. 수많은 동요 속에서 멜로디가 같은 곡을 찾을 때 그랬다. ABC송을 부르다가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로 넘어가고 ‘반짝반짝 작은 별’로 마무리한다. “알고 보니 전부 같은 음계였어!” 아이와 단둘이 있는 오후의 거실에서 홀로 유레카를 외친다. 이 주제로 당장 대화하고 싶지만 아직 옹알거릴 뿐인 이의 곁임을 깨닫고 문득 외로워진다.


잠깐 사이에 배밀이만으로 거실 저 끝에 가 있는 아이를 보는 날이 곧이어 온다. 걸음마를 할 즈음이면 집 안의 모든 가구와 가전이 위협이 된다. 게다가 우리 아이는 두 돌이 막 지날 무렵부터 백색가전을 몹시 사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해답을 찾았다. 세탁기와 건조기와 공기청정기에 잠금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베이비 락 기능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여기에 자물쇠 아이콘이 그려져 있었을까. 오랜 자취 생활로 웬만한 가전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단 한 번도 알아챈 적이 없다. 이쯤 되니 카시트 방향의 차 문이 안 열리도록 아예 막아두는 기능을 알게 되었을 때는 놀라지도 않았다. 세상은 보기보다 꼼꼼하고 기술과학자들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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