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가족의 미국 여행 이야기, 5살 아이와 맨하탄에서 브루클린까지
2018년 9월 24일 월요일
생각보다 시차 때문에 일정에 무리가 생기진 않았다. 우리는 아침 7시 반에 숙소에서 나왔다. 물론 5살짜리 아들도 함께했다. 바쁜 뉴요커들 사이에 줄을 서서 베이글과 커피를 사 먹었다. 뉴요커의 아침은 '뉴요커'라는 말이 지닌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11시 즈음 편한 옷차림에 선글라스를 걸치고 나가 에그 베네딕트와 고소한 아메리카노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뉴요커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만난 진짜 뉴요커들의 모습은 바쁜 서울 사람들과 비슷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일정을 시작했기에 제대로 된 뉴욕을 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오전 8시의 맨해튼 풍경은 그러했다. 뉴요커처럼 바쁘게 아침밥을 먹었지만 이제 관광객이 될 차례다.
원월드 전망대
나는 여행 때마다 비가 자주 왔다. 제주도를 갔을 때도, 신혼여행으로 스위스를 갔을 때도 비가 왔다.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동안 뉴욕의 일기예보는 온통 먹구름과 비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가 안 오는 지금 가야겠다며 전망대를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대기줄도 짧아서 짐 검사도 금방 끝나서 쾌적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분명 숙소에서 출발할 때는 구름 한 점 없었지만 우리가 전망대에 올라갔을 땐 이미 날이 흐려져 있었다. 그 부분이 아쉬웠지만 높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뉴욕의 모습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아들의 눈을 사로잡은 게 있었으니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발아래로 지나가는 차들만 좋아할 줄 알았더니 커다란 사람의 형상이 꽤나 멋졌나 보다. 공룡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 인 건지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을 찾아내고는 신나서 흉내를 내는 아이의 모습에 미국에 같이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원월드 전망대는 영상이 정말 멋있었다. 전 세계 어디에선가 전망대를 새로 만들겠다고 하면 분명 벤치마킹하러 와야 할 곳이다. 사방으로 창이 뚫려있는 원형의 전망대를 몇 바퀴고 걸어 다녔다. 흐린 날씨에도 멀리까지 볼 수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높기로 유명한 100층 높이에서도 다 볼 수는 없는 게 있다니, 인간은 작고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넓다는 걸 느꼈다. 또 아무리 높다 한들 구름이 가려버리면 또 볼 수 없으니 자연 앞에서는 언제나 무릎 꿇게 된다. 그 대단한 미국도 말이다.
월스트리트
월스트리트에 가면서부터 이번 여행의 방향성을 다시 되짚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뉴욕이 처음인 나와는 달리 남편은 경험이 있었다. 그가 말하길 나와 아들에게 보다 많은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라고 데려간 곳에서 황소의 엉덩이를 보고 나서 남편이 생각한 이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다 준다는 돌진하는 황소 동상은 월스트리트의 랜드마크다. '자 봤지? 이게 그 유명한 돌진하는 황소야'를 하기 위해 14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온 것이 아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인 월스트리트는 생각보다 볼 게 없었다. 증권거래소 건물 앞에 앉아서 주식이라도 사볼걸 그랬다.
내 기준 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간 미국 여행인데 조금 더 좋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지 글을 쓰며 자문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월스트리트에 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여행기 자체가 누군가에게 여행코스를 추천해주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다만 월스트리트에 가서 황소를 만나는 것 외에 또 다른 이유를 갖고 가면 더 좋을 것 같다. 내가 다시 뉴욕에 갈 일이 생긴다면 그때도 월스트리트에 갈 것이다. 다만 황소 앞에서 사진을 찍는 대신 황소가 그럭저럭 보이는 카페에 앉아 사진 찍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주식을 사보겠다. 아무런 상관은 없지만 그래 보고 싶다.
브루클린
맨해튼 남쪽까지 내려왔으니 이제 다리를 건너는 일만 남았다. 월스트리트의 다음 일정이 브루클린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종일 걸어 다녀서 힘들긴 했지만, 또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어서 건넜다. 5살짜리 아들은 잘 따라오고 있냐고? 대답은 아니오. 하지만 우리에겐 유모차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뉴욕에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다른 건 필요 없고 유모차는 꼭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다. 맨해튼에서 지하철 타긴 애매하고 버스는 꽉 막힌 도로 때문에 답이 없을 때 우리는 걸어가야 하고, 유모차 없이는 아이로부터 안아달란 말을 하루 100번은 들어야 할 것이다.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어서 건넜다. 생각보다 꽤 걸리지만 건너볼만하다. 이 커다란 다리에 도보용 코스를 넣어준 게 고맙다. 다리를 건너는 일 만으로도 맨해튼 섬의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고 다리 자체도 멋있다. 고풍스러운 다리의 디자인과 커튼월 고층빌딩으로 가득 찬 맨해튼의 모습은 꼭 사진을 찍게 만든다. '멋있다'를 남발하며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이 브루클린에 도착할 정도로 다리가 짧진 않다. 한참 사진을 찍고 이제 그만 찍어야지 할 때쯤이면 다리 절반 정도 왔다. 그리고 첨탑 부분이 멋있어서 다시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넜다.
점심은 피자를 먹기로 했다. 사실 다른 식당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랬다. 여기저기에 검색을 해봐도 피자가 맛있다고 했고, 다들 피자집에 갈 테고, 나는 특별하니까 다른 데를 탐험해보고 싶었지만 피자집에 갔다. 아침일찍부터 종일 걸어서 그만 검색하고 싶었던 구차한 이유도 있다. 역시나 다들 피자집 앞에 줄을 서있었고, 우리도 그 줄에 합류했다. 피자는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고 아들도 남편도 모두 맛있게 먹었다. 작은 사이즈의 피자를 시키면서 적진 않을까 후회했었지만 우리는 남겼다. 어른 둘에 아이 한 명이 먹기엔 작은 사이즈면 충분하다. 내가 상상한 미국의 피자는 치즈가 듬뿍 올라가 있어 쭉쭉 늘어나고 느끼한 걸 상상했는데 브루클린에서 먹은 피자 포함 두 번의 피자 모두 담백했다. 피자 도우는 담백하고 치즈의 고소함이 느껴지고 생토마토의 맛이 나는 건강한 맛이었다. 지금 피자에 대한 글을 쓰며 맛 표현에는 무언가 너그럽고 인심이 좋아 보이는 나를 발견했다. 월스트리트의 황소에 대한 감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느꼈다. 역시 먹는 게 남는 것인가.
남은 피자를 포장해 유모차 아래에 싣고 맨해튼 브릿지가 보이는 '포토스폿'을 찾아갔다. 잡지에도 자주 등장하고, 예능에도 나온 유명한 곳이라 다들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도 꽤 재밌었고 어떻게 찍어도 잡지처럼 나오는 것이 계속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한 가지 놀랐던 사실은 그 길이 차가 다니는 차로였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빵빵거리며 차가 다가오자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져 인도로 피했다. 그때 가장 먼저 차로 가운데로 돌아와 사진을 찍으면 그 유명한 브루클린의 포토스폿에서 독사진을 남길 수 있다. 정보를 주고자 이 여행기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정말 꿀팁임을 알려주고 싶다.
브루클린에서의 이후 시간들은 별로 한건 없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다. 계획대로 진행되지도 않았지만 그랬다. 해가 지는 노을까지 보고 가기로 했었는데 점심을 먹고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 유명한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시간이 남았다. 해가 질 때까지는 볕이 잘 드는 강가에 앉아 풍경을 한동안 감상했다. 해가 지는 걸 보러 바를 찾아놨는데 덤보에서 지하철을 또 타야 하는 곳이었다. 이때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루 종일 계속된 바깥 일정에 지하철에는 사람 또한 많았다. 그런데 어렵사리 찾아간 곳은 7시 이후에는 어린이가 있을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9시로 알고 간단한 저녁도 먹을 생각이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7시 10분 전이었다. 결국 다시 그곳을 빠져나와 근처 공원에서 해가 지는걸 잠깐 보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바람도 차갑고 배도 고파져서 조금 힘들었지만 의지할 가족이라는 게 내게 있음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브루클린에서 숙소가 있는 맨해튼으로 돌아왔다. 고작 이틀이 머물었는데 미드 맨해튼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제 그만 걸어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늦은 저녁으로 숙소에서 가까운 일본 라면집에 갔다. 일본 여행 갔을 때도 못 먹었던 이치란 라면을 미국 땅에서 비싸게 먹었다. 친구는 일본에서도 비싸게 판다며 위로했지만 그래도 라면 한 끼에 20불이 넘는 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비싸다는 투정도 잠시 라면을 모두 해치우고 일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