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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일상 | 다정함의 모양

by 규민

일상 | 다정함의 모양


3월 중순, 속상한 일이 있었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회사 모니터 앞에서 눈물, 콧물 범벅으로 있다가 결국 조퇴를 했다. 한 시간 이른 퇴근 시간을 꽉 채워 울었다. 엎드려 통곡을 하다가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아빠 품에 꼭 안겨 울었다. 눈물이 멎고 나니 목이 아주 쉬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울은 게 얼마만이던가. 이렇게 분하고 속상한 적이 있었던가. 울어도 울어도 또 새어 나오는 눈물들이 신기했다. 정말 사람의 신체의 2/3은 물로 이루어졌음을 실감했다.


J는 일이 터지자마자 나를 사무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자리를 비우기 힘든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서 J는 말없이, 괜찮다고 끊임없이 되뇌는 나를 지켜보았다. 내 실없는 소리에 웃어주고 가끔은 울상인 나를 놀렸다. 자리에 돌아가고 나서도 메신저로 나를 살폈다. C는 메신저로 통쾌하게 같이 욕을 해주고도 늦은 밤 전화가 왔다. 방에 쭈그리고 앉아있다는 말에 술이나 먹자며 나오라 했다. 울었단 걸 눈치채곤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다음 주에 맛있는 거 사줄게라며 달랬다. 엄마는 “어릴 때도 거실에 드러누워 울지는 않았는데. 서른이 아니라 세 살이다.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하며 웃었다. 동생은 늦은 밤 돌아와 "누가 우리 언니 울렸어!" 하며 방문을 왈칵 열고 쳐들어왔다.


다음날 마치 쌍꺼풀 수술 3일 차쯤 된 눈으로 요가원을 갔다. 요가가 끝난 후 차담에서 선생님은 다녀온지 몇년도 더 된 인도여행을 물어봤다. 모두가 함께 신나게 인도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인도인들이 시끄럽고 오지랖이 넓은지, 어떻게 저런 나라에서 요가철학 같은 심오한 철학이 탄생한 것인지, ‘진짜 즐거웠는데, 다시 가고 싶다.’ 고 말하면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차담을 끝내고 요가원을 나서려는 때 선생님은 나를 보고 물었다. “조금은 괜찮아졌어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금은 웃어야죠.”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날씨가 추워. 옷 따뜻하게 입어요. “ 모두들 다정한 말들을 한 마디씩 더 얹어주었다.


세상은 가끔 자기 멋대로 삐딱선을 탄다. 나는 분명 올곧게 가려고 애쓰는데 세상은 짓궂게 그런다. 가끔 그 삐딱선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이번이 그랬다. 속상해서 울고 분해서 울었다. 결국은 다정해서 울었다. 아프게 꽂힌 비수의 틈으로 밀고 들어오는 다정함에 울었다. 슬픔을 끌어안는 다정함은 동그랗고 보드랍고 소박했다. 왜 울었는지, 물어보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알아채준다. 그저 소복이 포근히 내려앉았다. 생각이 멎었다가 다시 떠올라 괴로울 때면 결국엔 저 다정함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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