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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장소 | 늦은 밤 편의점

by 규민

장소 | 늦은 밤 편의점


술자리가 끝나면 J와 나는 편의점으로 향하곤 한다. 과자 2 봉지를 골라 먹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나서야 헤어진다. 작년 언젠가부터 우리 아파트 뒷문에 위치한 편의점을 시작으로 2차가 끝난 후 당연하다는 듯 편의점 구석에 자리를 차지한다. 작년엔 C까지 있어 셋이 친하게 어울렸으나, 올해 초 C가 타 지역으로 발령을 받으며 결국 J와 나만 남게 된 것이다.


보통 편의점에 가는 시간은 10시가 꼬박 넘은 시간이다. 같이 술을 마셨던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면 둘이서 여유롭게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과자는 아무거나 고른 후 편의점 구석 테이블에 몸을 기대어 앉는다. 잔뜩 흐트러진 자세로 꼬인 혀로 간신히 이야기를 한다. 대화는 12시 넘어 아빠가 집에 언제 들어오냐는 독촉 전화가 올 때까지 이어진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아침이 되면 흐릿해져 버린다.



오랜만에 나잇대가 비슷한 회사 직원 다섯 명이 모였다. (물론 J도 있었다.) 2차까지 무난히 이어졌다. C가 없는 것 외에는 언제나 같은 술자리였다. 곧 있을 승진 이야기로 다들 들떴다. 승진하면 뭐를 살 거냐, 누가 선배냐 같은 유치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10시가 넘어 가게를 나왔다. 다들 택시를 타기 위해 대로변 가까이로 나섰다. J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한발 뒤로 물러섰다.


'양파링 먹으러 가자.'

은밀하게 카톡으로 편의점에 갈 궁리를 했다. 마지막 한 명이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근처 세븐일레븐으로 향했다. 둘이 제일 좋아하는 피스타치오 양파링이 보이지 않아 숏다리 과자와 꼬북칩 솔티캐러멜을 집어 들고 편의점 바깥 자리에 앉았다. 날씨가 어느새 포근해져 적당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그제야 둘은 긴장이 풀린 듯 '푸우우우-' 하고 참았던 숨을 가득 내뱉었다.


"나쁘진 않았어. 그렇지?" "응 나쁘진 않았어. 나쁘진 않았는데, 근데 왜 이렇게 힘들지?"

내 질문에 J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뱉었다.

"C가 없어서 그래."

아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잠시 C를 그리워하면서 과자를 와구와구 집어먹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어느덧 회사생활 4년 차, 나를 지키고자 입기 시작한 사회생활 갑옷이 꽤 두꺼워져 버렸다.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려 마시는 술조차 이겨낼 만큼 갑갑하게 나를 조여온다.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 있어도, 꾹꾹 누르고 참는다. 술에 취하고 싶어도 괜히 말이 헛나올까 실낱같은 정신줄을 꼭 붙든다.


마음을 터놓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될 줄 몰랐다. 학창 시절, 떡볶이만 먹어도 술술 나왔던 꾸밈없던 속마음들이, 대학교 시절 술자리에 삼삼오오 모여 새벽까지 끊임없이 나눴던 고민들이, 언젠가부터 내 밑천을 드러내는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회사에는 어느덧 친한 사람보다 친함을 흉내 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친함을 흉내 내는 사이에는 마음을 내려놓을 곳이 없다. 어디에도 내려놓지 못한 것들은 내 속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목구멍까지 차올라온 것들이, 목젖을 눌러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편의점을 간다. 진탕 취해 흐릿해질 다음날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둘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한다. 기억이 흐릿해질수록 좋다. 기억한다 한 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저 다음의 편의점을 기약한다. 다음의 편의점에, 또다시 흐릿한 기억들을 이어간다. 그렇게 늦은 밤 편의점은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을 곳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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