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가 능력이 될때> 라나의 편지
혜정 언니가 이 책을 사기까지의 이야기를 따라 언니의 사회 초년생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로웠어요. 성호와 내가 캠퍼스를 누리고 다닐 무렵, 언니는 직장에서 남녀평등을 생각하며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었다니 우리가 또 모르는 언니의 모습 같아요. 우리에게는 그저 다정다감 언니이니까요.
저도 이 책을 펼쳤을 때 자연스레 제 사회생활 하던 시절이 떠올랐어요. 첫째를 낳기 전에 다녔던 회사, 인턴 포함하면 네 번째 회사였는데 저는 그 회사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늘 을이어야만 했던 대행사 생활을 종결짓고 드디어 갑이 된 기분이었다 할까요? 외국계 회사라는 점(물론 나중에 한국 회사에 매각되었지만), 유아교육업계에서 유명한 곳이라는 점, 내가 일할 부서가 마케팅 부서라는 점 등 마음에 드는 부분이 참 많았던 회사였죠. 결국은 지금 사는 대전에 남편을 따라오게 되면서 그만두었지만, 아직도 가끔 내가 그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어땠을까? 생각에 잠기곤 해요.
하지만 마음에 다 든다고 해서 제가 그곳에서 특출나게 저의 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죠. 저는 그곳 유아교육프로그램 판매를 위한 마케팅 콘텐츠를 제작하는 부서에 저보다 한 살 많은 남자분과 함께 입사했었어요. 그분은 저보다 경력이 부족해 사원으로, 저는 대리로 일하게 되었는데 본의 아니게 저와 그분은 경쟁상대 아닌 경쟁상대로 일했던 거 같아요. 함께 각각 다른 제품의 콘텐츠 기획안을 팀장님에게 갔어도, 뭔가 그분은 통과가 되고, 저는 수정 사항을 잔뜩 받은 채 혼자 사무실에서 밤샘 야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하면서 뭔가 책 뒤표지에 나오는 말과 비슷하게 “내가 더 애쓰는데 왜 저 사람만 술술 풀릴까?”라고 자주 생각하곤 했어요. 그런데 <태도가 능력이 될 때> 책을 읽고 있으니 저와 그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이 책의 능력이 되는 태도 다섯 번째 존중력에 나오는 ‘모든 일의 시작은 약속 시각을 지키는 것부터’라는 챕터 부분은 제목을 읽는 순간부터 팀장님께 깨졌던 내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타부서에 가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작업 마감 기한을 늦추고 있는 나의 모습도 보이는 듯했어요. 그는 죽이 되듯 밥이 되었듯 마감 기한 안에 팀장님에게 보고하고 있었고, 나는 팀장님께 업무 기한이 되어서 부름을 받고 아직 다 처리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하고 있었죠.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당시에 저는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것은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요. (씁쓸)
“일을 빠릿빠릿하게 잘한다는 것은 무조건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업무의 우선순위를 매겨 적절한 속도로 자신의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의 중요도를 따져 계획적으로 할 때, 노력은 노력대로 하고도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 그랬어요. 야근은 야근대로 하고는 업무를 제시간 안에 처리를 잘못하는 직원으로 초반에 찍혔던 거 같아요. 하지만 나는 나대로 나의 노력과 과정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팀장님에 대해 야속하다고 생각하고 혼자 화장실로 울었던 찌질했던 과거가 재소환되네요. 하지만 저자가 힘주어 써놓은 글을 보면서 나를 관리하는 팀장님의 입장에서 내가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직원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시한폭탄 같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회사의 마케팅 특성상 제품 판매 홍보 콘텐츠를 우편 DM으로 제작했어요. 우편 DM을 제작하기 위해서 인쇄, 발송 기간을 늘 고려해야 했죠. 그런데 나는 늘 내가 하는 업무에서만 생각하고 그 기간들을 등한시하고 작업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나의 흑역사만 잔뜩 말하고 나니, 우울하네요. 분위기 전환 겸 스스로가 회사 생활에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떠올려봅니다. 나는 함께 하는 동료와 비교적 합이 잘 맞는 동료였다고 생각해요. 홍보 콘텐츠 제작 특성상 늘 옆 디자인팀과 함께 일했었는데 그때 소속된 팀 내에서 함께 일하기 어려워하는 남자 대리님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와 일했을 때 그분의 달라진 업무 태도에 사람들이 놀랐었던 기억이 나요. 제가 업무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있기보다 부족에 가까웠죠. 하지만 그분과 일했던 다른 사람들과 제가 달랐던 점은 딱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그분을 대하는 저의 태도였죠.
“어떤 행동이든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즉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입니다. 상대의 생각과 일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소한 언행을 통해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필요로 하는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동료들이 그분에 대한 평가를 듣고 그분을 평가하기보다 그분 자체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어요. 그분은 디자이너로서 꽤 프라이드가 강하셨던 분이어서 자신의 디자인 수정하는 것에 자존심을 몹시 상해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꽤 정중하게 디자인 수정도 요청하고 그분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이려고 했었던 거 같아요. 그런 저의 진심이 닿았는지 함께 야근할 때도 즐거웠던 기억이 나네요.
끝까지 다니고 싶었지만 다닐 수 없었던 그 회사 생활이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어요. 이 회사 생활을 끝내고 주변 동료들을 내 사람으로 남겼어요. 지금 당장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초반에 날 많이 꾸짖었던 팀장님이 이직하신 회사의 외주 일을 맡기려고 한 적도 있다고 자랑해봅니다.
저는 늘 회사에서 무엇인가 보고를 할 때 “자신감 없어 보인다.”라는 말을 여러 번 듣고 회사 생활을 하며 위축되었던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꽤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로서 좋은 태도를 가졌던 사람이었다고 재평가해보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이런 사람 같다고 느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공유하며 이 편지를 맺을까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들과 앞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갖추고 싶은 능력이기도 하겠네요. 그럼 이만 안녕히 또 다음 책으로 만나요.
“업무 현장에서는 주변 분위기에 잘 적응하고 스며드는 사람, 집단 내에서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업종에 관계없이 사교성을 갖고 주변의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아는 능력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2021년 8월 29일 뒤늦은 장마 중 비가 오지 않던 어느 날
8년 전 김 대리 시절 추억에 잠긴 라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