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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잔 Oct 24. 2021

프로 게으름러의 사회생활

<태도가 능력이 될때> 성호의 편지

안녕하세요? 역전의 용사들이여!

  어제 우리가 책 소개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저를 계속 동화 속에 살게 하네요. 발이 1미터쯤 훨훨 떠다니는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끊임없이 설레고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것이 넘들이 보기에 숭할까 걱정이 될 정도예요.

게다가 마감을 일주일이나 미루자고 했지만 저는 그새를 못 참고 두 사람에게 편지를 깨똑에도 남기고 또 편지를 쓰고 있어요. 

저는 왜 이렇게 주책맞은 지.      

<태도가 능력이 될 때>로 쓴 두 사람의 편지를 나란히 읽고 돌아왔어요. 두 사람은 그때 그 시절을 회상했지만 저는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떠올려요.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단절 여성이 된 후에 7년 만에 다닌 ( 알바 아닌 ) 첫 직장이랍니다. 신입과 같은 마음과 멍청한 태도로 이제 일 년을 간신히 넘겼으니 말이에요. 

‘태도가 능력이 될 때’라는 제목부터 저를 콕콕 찔러대네요. 

“그래 너의 습관적인 5분 늦기 시전은 너의 무능력을 말해줘~ 미리 준비하지 못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응하지 못한 건 네가 멍청해서야~ 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니? 다른 선생님들은 다 하는데 너는 왜 모르니? 개인 수업을 위한 발전에 필요한 공부는 알아서 해야지 그걸 왜 나에게 묻니? 엄마들이 아무리 진상이어도 네가 잘했으면 애들이 우르르 그만두겠니” 

이런 느낌과 생각이 든답니다. 좀 배배 꼬였나요?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시간 맞춰 출근하는 것도 참 어렵더라고요. 분명히 집에서 일찍 일어나서 할 일도 다 하고 세상 여유를 다 부리고는 꼭 택시를 타게 되더라고요. 나라는 인간은 왜 이러는 걸까요..

게다가 약속된 기한에 맞춰 수업일지를 쓰고, 결과물을 올리는 일은 어렵지도 않으면서 끝까지 게으름을 피우다 꼭 누군가에게 푸시를 받고 말아요. 그러곤 자괴감에 빠지죠. ♪나는 멍청이 야야 야야야야 아 워너 노바디노바디노바뤼 (화사 노래인데 혜정 언니는 이게 뭔가 할거 같네요..ㅎ) 선천 후천 둘 다 발달한 프로게으름러입니다만..     


  제가 논술학원 강사가 된 지 1년 하고도 3개월이 됐네요. 오늘은 명상이 필요한 것 같아 동네를 산책했어요. 출근해 있는 시간에 나가 30분 정도 햇볕을 쬐며 걸었어요. 마음이 길어지더라고요. 뭔 말이냐고요? 출근은 했고 해야 할 일은 쌓여 있지만 강의실에 앉아 어떤 일도 시작을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거든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필요한 인간이랍니다. 실컷 자고 실컷 놀고 출근해서는 실컷 워밍업을 해요. 주말을 보낸 후 첫 출근날은 매번 워밍업을 하다 끝나요.     


제가 하는 수업에 일 년 일 개월째 함께 하고 있는 6학년 서영이의 부모님이 학원 근처에서 떡볶이 가게를 해요. 산책이 끝날 때쯤 거기에 쑥 들어갔어요. 서영이 어머님이 떡볶이 가게 하시기 전에 바리스타를 길러내는 강사셨대요. 떡볶이 가게에서 파는 라떼가 일품이라 가끔 가서 마시거든요? 오늘따라 여유로운 어머님과 대화가 시작됐어요. 서영이가 논술 수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머니께서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다른 반에 몇 번 보강을 갔다가 조성호 선생님이 아닌 선생님들의 수업에 다신 가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으며, 서영이는 수업을 끝내고 오면 매번 책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수업에서 다룬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꼭 이야기한다는 것. 지난여름 방학에는 서영이가 동생과 함께 있느라 모든 학원을 한 달간 쉬었거든요. 서영이가 그랬대요. 다른 학원 쉰 건 괜찮은데 논술학원 쉰 건 너무 후회된다고, 그래서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시는 거예요.      

서영이는 우리 반에서 과제를 엄청나게 성실하게 해 오고, 수업시간에 손들어 질문하고 발표하는 투탑 중 한 명이에요. 그게 뭐 대수인가 싶으시겠지만, 매주 한 권의 청소년 책을 읽고 교재에 나오는 과제를 하려면 최소 3시간 이상 걸린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그걸 일 년 넘게 매주 해오고 있는 아이랍니다. 학원에는 제가 존경하는 아이들이 꽤 돼요. 저런 성실함은 어디서 탄생했는지 그 신비를 파헤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죠.     


지난주에 소설 수업하다가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연애 감정을 13살짜리들이 영 이해 못 하는 거예요. 별 수 있나요, 제 중학교 때 50일 동안 안녕만 하다 부끄러워 헤어진 첫 남친과 두 번째 남친, 그리고 고1 때 남친 이야기까지 해줬어요. 서영이는 그걸 들으며 흥흥거리며 웃다가 갔거든요?

그 아이가 논술 수업을 그리고 조성호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오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행복해져서는 더 열심히 아이들을 웃겨야겠다, 더 따뜻하게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 마음먹고 돌아왔어요. 해야 할 일들을 척척 해치웠네요.      


  라나의 편지를 읽으며 자신의 강점에 대해 이야기 한 부분을 저도 따라 해 봐요.

분명 나의 부족한 부분은 몇 가지 있을 거예요... 단 몇 가지..ㅋㅋㅋ 그것보단 강점을 크게 보고 계발시키는 편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애들을 웃기는 게 좋거든요. 아이들이 수업에 와서 행복하길 바라요.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가 의견을 내면 선생님에게 존중받은 경험으로 세상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길 바라요. 친구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길 바라요. 그리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읽고 쓰면서 마음이 자라나길 바라요. 책이라는 평생 친구를 사귀었으면 좋겠어요.      

내 강점을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지만, 아이들에게 똑똑하고 웃긴 데다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거죠. 엄마가 억지로 등 떠밀어 보낸 아이들도 저랑 만나서 꽤나 잘 적응하는 걸 보면 대견해요. 수업시간 내내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아야 마음이 편한 (내성적인) 아이가, 어느 날 발표하고 싶다고 손을 들면 그게 그렇게 예쁘고요. 우정과 사랑이 제 강점이네요. 후훗.      


  최근에 나르시시트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유튜브 영상을 몇 개 봤는데, 제가 아닌가 걱정이 드는 글입니다ㅎㅎ 제 글을 읽고 두 사람이 왠지 대신 부끄러워질 거 같은데요..ㅎ     

<태도가 능력이 될 때>를 읽으면서는 모든 챕터에 줄을 좍좍 그었어요. 각 챕터마다 참고하고 적용해 보고 싶었거든요. 조직 생활하면서 필요한 태도와 멘트가 실용하게 쓰였어요. 

개선할 부분은 고쳐보고, 내가 잘하는 부분도 찾아보면서 그렇게 일과 나를 돌아보는데 보탬이 될 만한 책이라고 강력 추천하겠어요.


  이렇게 나르시스적으로 글을 쓴 데는 다 대회에서 일등 먹은 탓이에요ㅎㅎ

아 겸손의 대명사 우리 라나 혜정 님이 저의 균형을 맞춰주시겠지요.

이제 자러 가야겠어요. 벌써 새벽이네요.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자뻑의 힘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성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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