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불편한 운동화

by 안승준

난 나 자신에게 돈을 쓰는 것에 많이 인색한 편이다.


휴대전화나 컴퓨터도 그들이 스스로는 더 이상 동작하지 않을 때까지 사용하고 샴푸나 치약은 어떤 방법으로도 거품을 낼 수 없을 때까지 사용한다.


검소한 부모님의 영향이라고 생각되는 내 경제관념은 어릴 적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서 날씨가 더우면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쥐어준 천 원짜리 지폐는 여름을 넘어 겨울이 될 때까지도 그 모습 그대로 지갑 한구석을 지키고 있었던 적이 많다.


옷이나 신발도 구멍이 심하게 나기 전까지 입고 신고 다니는 내 성격 때문에 때로는 가족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낡은 옷가지들을 가져다 버리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도 않는 나인데 아직도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산다는 게 내겐 조금 큰 용기를 필요로 할 때가 많다.


그런 내 모습이 궁상맞아 보였는지 며칠 전 친구가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해 주었다.


아직 몇 년은 충분히 신을 수 있을 것 같은 헌 것을 놔두고 새 것을 신는다는 것이 내겐 또 한 번의 고민으로 다가왔지만 그건 정말 잠깐일 뿐이었다.


억지로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새 신발을 권하는 친구 덕분에 얼떨결에 새신을 신고 발을 내디뎠을 때 난 순간적으로 이 시대의 신발기술에 감탄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따뜻하고 푹신하고 발에 착 감기는 느낌은 절대로 과장된 광고 카피 문구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래서 유명 브랜드의 신제품을 찾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맴도는 순간 내 오랜 경제관념까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처음 운동화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폴짝거리며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 녀석은 깔깔대며 웃고 있었지만 내 표현은 온전히 진심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피곤할 것 같지도 않았고 발이 시리거나 미끄러지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 신발이 얼마라고 해도 전혀 아까울 것 같지가 않았다.


매일 걷던 딱딱한 보도블록은 어느새 부드러운 카펫처럼 푹신한 바닥이 되어있었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했고 물 위를 떠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어제의 나와 신발이 바뀐 나의 걸음이 느끼는 차이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경제적 유리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이 아니라 보도블록이 바뀐다면 어떨까 하는 것에 생각이 다다랐다.


사람들은 신발에 따라 거칠고 딱딱한 거리를 걷기도 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길을 가기도 하지만 길을 바꾸면 어떤 신발을 신어도 똑같이 기분 좋은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새 신발을 신은 사람이나 헌신발을 신은 사람이나 신발을 신지 못한 사람이나 큰 차이 없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빈부는 노력의 여하에 관계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매번 새로 산 신발을 신을 수도 있지만 다시 딱딱한 헌신발을 신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평생 부드러운 신발의 감촉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걷는 것처럼 가장 기본적인 공통의 행위는 누구나 보편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를 좋아한다.


조금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적어도 건강을 지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보장으로 지켜주고 있는 것이 사람 냄새나는 것 같아서 좋다.


역대 어느 겨울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한파가 찾아온 요즘 뉴스에서는 추운 냉골방에서 돌아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또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여름에 전기가 끊겨서 찜통 같은 집에서 생을 마감하신 분들의 사연도 끊이지를 않았다.


물을 마시고 전기를 사용하고 집을 따뜻하게 데우는 정도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너무도 기본적인 욕구이자 권리가 되었다.


같은 시간을 살면서 너무도 기본적인 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웃과 함께 한다는 것은 누리고 있는 이들에겐 마음의 불편함을 넘어서서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한 무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사회라고는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마저 그 냉정한 우열의 잣대에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의 치열한 경쟁을 마친 저녁엔 편안한 집에서 선풍기 쐬고 보일러 온기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는 건강보험처럼 공공의 영역이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아니 내일부터라도 극도로 기본적인 것들의 부족으로 끔찍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더이 상 없었으면 좋겠다.


최고급 운동화를 모두 신을 수는 없더라도 세상 모든 보도블록을 당장 푹신하게 만들 수는 없더라도 모든 이가 최소한의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대적 가치가 삶의 훈장이 되고 노력의 대가로 여겨지는 세상이라도 보편적인 최소함을 공유할 수 있는 나눔의 온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자만 걷고 있는 푹신한 걸음이 왠지 모르게 미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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