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모임에서 목소리를 줄여야 하는 이유

by 안승준

우리 학교는 미션스쿨이다.


교사들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아침마다 찬송가 한 곡 정도를 부르는 짧은 예배로 회의를 시작한다.


나도 조금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이 한 목소리와 한 마음으로 아침을 여는 분위기는 진심으로 좋아해서 최대한 열심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


목소리 크기 적지 않은 내가 아랫배 힘 가득히 주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뭔가 스스로의 노래에 취해 나르시시즘 비슷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주변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수록 나라도 열심히 불러야지 하는 책임감도 느끼는데 그럴수록 내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힘을 더해간다.


그런데 어제의 아침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연일 계속되는 연말 모임으로 목소리가 잘 나오지를 않았다.


내가 참 좋아하는 찬송가였는데도 함께 소리를 낼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몇 번 용을 쓰다가 한 두 마디 불러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가사를 읽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내게 묘한 경험이 시작되었다.


동료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작아서 부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 선생님도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었고 노래실력에 자신이 없어 보이는 또 다른 선생님도 작은 목소리이지만 함께 하고 있었다.


난 바로 옆에 있는 선생님의 노래마저도 처음으로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몇 년간 그 자리에서 함께 하는 동료들이었는데 내 목소리를 키워가는 동안 대부분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별것 아닌 경험일 수 있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난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인 회의라도 어떤 구성원이 참석한 모임이라도 나의 의견을 말하고 그것이 관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 주장은 상당히 많은 경우 최종 의견이 되기도 하고 그것은 내가 가진 역할이고 책임이라고 느껴왔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그때마다 아침에 들었던 작은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 소리로 묻혀버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반성이 되었다.


뉴스를 보다 보면 300여 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목소리를 내고 방송에 나오는 의원은 몇 되지를 않는다.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작은 소리들과는 타협할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열심히 큰 소리 내는 국회의원들을 응원하고 칭찬하는 시간 동안 작게 소리 내던 많은 의원들을 일하지 않는 게으름뱅이 취급을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방송매체에 출연하고 당을 대표하는 힘 좀 센 몇몇의 의견 속에 작은 소리들이 다수결이라는 논리에 파묻혀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제저녁에도 연말 모임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한 해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동안 난 조금은 다른 관찰을 해보았다.


목소리 내는 것 좋아하고 할 말 많은 내가 하루아침에 조용해질 수는 없었지만 조금은 듣는 역할을 택해 보려고 노력했다.


역시나 메뉴를 정하고 장소를 결정하는 시간부터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은 아주 작은 소수였다.


시작하는 시간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도 자리를 파하는 시간을 정하는 것도 목소리 큰 몇몇의 몫이었다.


분위기를 주도하고 리드하는 능력은 참 좋은 달란트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구성원들의 작은 소리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입을 열고 소리를 내는 동안 귀를 닫고 살지는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하는 저녁이다.


적지 않은 연말연시 모임이 약속으로 잡혀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 봐야겠다.


아침 예배시간의 노랫소리는 조금 작은 소리도 있었고 아주 큰 소리도 있었다.


노래실력이 출중한 어떤 분도 있었지만 다소 음정이 불안한 분들도 함께하고 계셨다.


그런데 그 소리들은 하나가 되고 합창이라 불리면서 아침의 하나 된 시작을 열어주었다.


때로는 큰 소리로 주변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것도 앞선 사람들의 역할이다.


그러나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또한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하는 우리의 몫이다.


그것이 하모니이고 그것이 함께 하는 의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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