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총량 보존의 법칙

by 안승준

많은 사람들은 나 같은 시각장애인을 처음 만났을 때 '실례가 안된다면...'을 전제하고 이런저런 개인적인 질문을 늘어놓는다.


"언제부터 안 보였어요?" "그럼 앞에는 어떤 장면이 보여요?" "저는 어떻게 생겼을 것 같아요"로 이어지는 질문들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특별히 바쁘거나 마음 상태가 불편하지 않다면 솔직하게 답을 해 주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났을 때 느끼는 호기심이나 그들이 내게 느끼는 궁금증이나 다름에 대한 본능적 갈증이라는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즐겁기까지 하다.


그냥 내가 원빈이고 이 자리는 팬미팅 질문시간이다 생각하면 그다지 마음 무거울 필요도 없다.


멋쩍고 미안한 말투로 시작한 질문은 내 대답에서 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을 포착하게 되면 점점 과감해지는 경향을 가지는데 끝판왕에 가까운 질문 중 하나가 내게 있어 실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질문을 던지는 각자의 상상들로 비춰볼 때 '실명'이라는 끔찍한 상태와 여유 있게 웃고 있는 내 입고리는 양자역학이 아니면 하나의 얼굴 안에 공존할 수 없다고 사람들은 굳게 믿는 것 같다.


멀쩡한 눈 가졌던 오래전 나도 그 보다 더한 생각들 가지고 살았던 터라 묻는 이 가 무엇을 묻던지 난 어느 정도는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분들에게 내게 있어 실명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기 전에 시원하게 털어놓으려고 한다.


여러 번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13살까지의 나는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삶을 살았다.


공부는 열심히 하면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고 그림도 악기도 서예도 운동도 내가 하고 싶으면 안 되는 것은 없었다.


전교 1등을 하고 싶으면 그만큼 노력하면 되고 전국 1등도 세계 1등도 내 노력의 크기에 따라서는 불가능이란 없었다.

캡처.PNG 실명과 동시에 받게 된 초등학교 6학년 수학올림피아드 1등 뱃지 사진

장난감도 컴퓨터도 내가 원하는 것은 못 가져 본 것도 없었고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난 공부 못하는 친구도 준비물 가져오지 못하는 친구도 옷이 지저분한 친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친구들은 노력이 부족했고 게으른 아이들일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장애인은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 상상 밖의 존재들이었다.


예수 믿는 나의 종교적 해석이긴 하지만 하늘은 내게 눈을 빼앗아가는 것 말고는 좀 더 많은 사람을 이해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내게 있어서도 그런 생각을 가지기까지는 한강물 넘칠 만큼의 눈물과 지옥불 비견할 만큼의 가슴 타들어가는 시간들이 필요했지만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난 시각장애를 가져야만 시각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멘탈을 가지고 있었고 의외로 장애는 내게 있어서는 겪어낼 만큼의 불편함이었다.


하늘은 그래서 내게 시각장애를 주기로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어릴 적 기억들을 생각한다면 내게 시력이 있었다면 난 유명한 과학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어떤 돈 많은 사업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탄탄대로만을 걸었다면 지금의 내가 가진 철학과 가치들은 내겐 먼 나라 이야기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삶은 아래에서 위를 공감하기는 쉬워도 위에서 아래를 느낀다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부족한 나의 인성은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내게 아직 시력이 붙어있었다면 나의 성공과 반비례하여 꽤나 이기적인 모습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난 교사가 되기까지도 조금은 힘든 과정을 거쳤다.


전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시각장애인 고등학생이었고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학 입학도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내 직장생활의 시작은 특수교육보조원이었다.


친구들 앞에서는 당당하게 카드를 내밀고 계산했지만 선생님 하는 친구들이 받는 월급은 내 월급의 세 배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또한 내게 있어 보조선생님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가짐의 초석이 되었던 듯하다.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 실명은 분명히 불편하고 지우고 싶은 기억이지만 시력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놓침으로써 내게 주어진 다름을 이해하는 달란트 또한 그와 비견할 수 있을 만큼 내겐 소중한 가치라고 확신한다.


아주 작은 자리에서부터 출발한 학교에서의 내 시작도 돈이나 명예는 잃었을지언정 분명 내게 또 다른 의미와 공부로 작용했다고 나는 확신하고 감사한다.


나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노래를 한다.


나의 글과 말들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가진 실패와 아픔의 경험들로 인한 에너지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나는 그것으로 내 불편한 눈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


질량과 에너지는 보존의 법칙이 있다.


난 가치에도 그 총량이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언제라도 실패를 하지만 잃는 것만큼 그 안에서 얻어지는 그만큼의 가치가 존재함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 눈은 앞을 보는 기능은 상실했지만 또 다른 역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오늘이라도 당장 눈을 되돌려 준다면 나는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시력을 되찾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실명이라는 경험으로 얻어진 모든 달란트가 그와 바꿔진다면 난 쉽게 시력을 달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난 요즘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고 있다.


아주 오랜 시간 기다려온 따뜻하고 달콤한 시간들이지만 시각장애인이라는 내 상황은 그 언젠가도 겪어보지 못한 힘든 시간을 함께 던져주고 있다.


인기 많고 잘 나간다고 자부하던 거만한 나의 시간은 또 다른 실패의 나락 앞에 서 있다.


그렇지만 내가 믿는 한 가지는 오늘의 시간 또한 또 다른 값진 무언가를 얻기 위한 인고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시간은 내게 있어 또 다른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고 그것은 내 삶의 또 하나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난 살면서 많이 넘어지고 많이 실패하는 사람이다.


실패는 내가 가졌던 소중한 가치가 또 다른 의미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내게 있어 실명은 다름을 얻게 하기 위한 변화의 과정이었다.


달란트도 가치도 총량 보존의 법칙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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