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잘하는 방법

by 안승준


우리 아버지는 고기를 좋아하신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를 너무도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가 피곤해 보일 때, 편찮으실 때, 두 분 만의 분위기 있는 자리가 필요할 때마저도 일관되게 항상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승준 엄마 내가 한우 사줄게 가자!"


베푸시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아끼는 이에게 가장 귀한 것을 내어 대접하는 감동스러운 장면이지만 우리 어머니는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신다.


게다가 우리 어머니는 미아동 별난 고기 사장님이시다.


개콘보다 재미있는 장면이지만 40여 년간 살 부대끼고 사시는 두 분을 보면 아버지의 마음도 진정 그때마다 진심이신 게 분명하다.


열심히 큐피드의 화살을 날리는 아버지와 그와는 반대로 일그러져 가는 어머니의 표정을 지켜보는 내 심정만 매번 안타까울 뿐이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나도 고기를 꽤나 좋아한다.


직장 회식이나 친구들 만날 때도 고깃집에 자주 가는데 그때마다 누군가는 앞 못 보는 내게 고기를 구워주는 반강제 봉사활동에 동원된다.


신입교사 때 교장선생님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때마다 민망하고 멋쩍고 미안한 것 또한 나만의 몫이었지만 그냥 그마저도 하나의 장점이라 여기며 위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내게 가장 큰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 그건 삼겹살이 얼마나 익었는지 짐작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름의 사회적 위치와 체면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반복적으로 "고기가 익었나요?"를 묻는 것은 스스로 정한 최소한의 금기였으므로 난 일반적으로 익은 고기가 놓이는 양파 접시에 젓가락을 슬쩍 가져가 보는 것으로 궁금증을 해결해 보곤 한다.


고기를 찾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기가 없더라도 원래부터 양파를 먹으려고 했던 것처럼 양파를 집어와서 맛있게 먹는다.


몇 분 후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난 양파를 먹고 또다시 양파를 먹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파는 바닥나고 난 그쯤 되면 이젠 고기만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법! 누구인지도 모르는 적극적 선을 행하시는 분은 내 접시에 양파 리필이라는 잔인한 친절을 베풀어 놓으신다.


회식이 끝날 무렵 난 고깃집에 다녀온 것인지 양파 샐러드 집에 다녀온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 되지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를 실천한 양파 리필 범도 그 자신은 착한 일 했다고 자부하며 돌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길 다니다 보면 나의 목적지와는 반대인 큰길로 잡아 끄시는 아저씨들도 만나고 천 원짜리 쥐어주며 인생 포기하지 말라는 할머니도 만난다.


몇 정거장 안 가는 나를 어른 말 들으라면서 굳이 노약자 석에 앉혀주는 어른을 만난 뒤에는 젊은 놈이 뻔뻔하게 경로석에 앉아있다며 꾸짖는 또 다른 할아버님을 만나기도 한다.


큰길 좋아하시는 아저씨도 큰돈 내어주신 할머니도 노약자석에 앉혀주신 어르신마저도 내게 느낀 측은지심을 선한 의지와 용기로 풀어내 보려 하신 것이 분명하지만 난 오히려 그분들 민망하지 않으시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처지가 되고는 한다.


당연하고 기본적인 이야기이지만 도움이나 선물은 받는 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단계가 꼭 필요하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하면 에스키모에게 에어컨 사 주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롱 패딩 사주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 마음 모르는 우리 아버지나 내게 어떤 도움 필요한지 모르셨던 분들에게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하겠지만 이미 우리 대부분은 간단한 해법을 알고 있고 그렇게 해 오기도 했다.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난 첫 데이트 날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취미가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뭐 하는 걸 좋아하는지 쉼 없이 묻고 또 묻는다.


예쁜 아기를 낳은 엄마들은 목소리마저 작은 녀석의 톤에 맞추어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아리를 향해서까지도 그 꼬마 녀석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려는 초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 인간은 원래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인 것처럼 난 상대를 많이 아는 연애는 분명 아름다운 성공이 동반되고 아이의 마음을 더 많이 알아주는 어머니가 건강한 양육을 보증한다고 확신한다.


다만 그런 것들이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잘 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아는 대로 행동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은 다른 이 도 그럴 것이라고 착각한다.


길에서 만난 장애인은 언제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의 선행은 그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민폐나 폭력이 되기도 한다.


주고 싶은 것도 해 주고 싶은 것도 어쩌면 내가 갖고 싶고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혹은 나만의 고집은 아니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의학에서는 치료보다 중요한 것이 진단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훌륭한 수술도 대단한 신약도 정확한 진단이 동반되지 않으면 부작용을 양산할 뿐이다.


자판기 커피 한잔이 간절할 때 내어주는 몇 닢의 동전이 얼마나 짠하게 고마운지 알지 않는가?


시린 겨울날 양보받은 털장갑 하나가 그 어떤 명품 가죽장갑보다 더 따스했다는 걸 알지 않는가?


배부른 날의 비싼 음식보다 어느 배고픈 날 나눠 준 빵조각 하나가 뇌리에 깊게 남아있는 것은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와주고 싶다면 그가 도움을 원하고 있는지 먼저 확인하길 바란다.


마음을 얻고 싶다면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내기를 권한다.

캡처.PNG 벤치에 남자와 여자가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당신이 알고 있는 근거 없는 지식들로 인한 자신감을 버리고 겸손하게 상대를 알아가려 할 때 당신은 관계의 고수가 될 수 있다.


연애를 잘할 수 있고 가족을 화목하게 만들 수도 있다.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제대로 도울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의 인격을 높여 줄 수 있다.


오늘 밤 아버지께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은 고기가 아니라 해물과 곰장어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려봐야겠다.


다음번 회식 때는 내가 먼저 난 양파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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