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5년 경력의 비 시각 제어기술 전문가이다

by 안승준

난 25년 경력의 비 시각 제어기술 전문가이다.


나라는 사람은 수학교사이기도 하고 여러 매체에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하고 작은 밴드의 보컬이자 작사가이며 가끔은 기타를 연주하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욕심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성격 덕분에 나름 대우받는 사회적 포지션을 점유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 대표적인 아이덴티티는 시각장애인 안승준이다.

캡처.PNG 세바시 462회 출연 모습

전문성 인정해 준다는 좀 배웠다는 사람들도 시각장애인 수학교사 시각장애인 밴드 보컬 정도의 좁쌀 만큼한 호칭 예의의 호전을 보이는 것이 이사회에서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다.


브런치라는 새로운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 오늘 내가 선택한 주제도 그래서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내 생각들이다.


대단히 주관적이고 나 중심적인 주장이라는 것을 먼저 밝히면서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써 내려갈 나의 모든 글들이 오늘의 기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동의하시는 분들은 구독을 그렇지 않은 분들은 그 반대의 선택을 하시는 것을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난 '장애는 본디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캡처2.PNG 출처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세상에 수많은 다름 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모든 다름을 포용할 수 없는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형편이 다수에게 적합한 편의를 추구하고 그 범주에 속하지 못해서 불편을 겪어야 하는 소수를 장애라고 단정하고 낙인찍어왔던 것이다.


무거운 철기 구들을 들기 힘들었던 언젠가의 여성들도 산업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소품종 대량생산 속에서의 왼손잡이들도 따지고 보면 다수결에 의한 배려받지 못한 희생적 소수였지만 그들 또한 꽤 오랜 시간 동안 작은 다름으로 인해 열등한 족속들로 치부받아왔다.


복지라고 불리는 따뜻해 보이는 추가적 조치로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든다고들 하지만 어떤 특별한 설계도 다수의 평범함을 쫓을 수는 없다.


신체의 결손이나 부족한 상태를 가진 이들을 어찌 단순한 다름이냐고 반발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그 또한 미디어의 지속적 새뇌화에 근거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상 선벌악'에 충실한 드라마들은 해피 앤딩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도구로 악역들에게 장애 선고라는 끔찍한 장면을 만들어내는데 특히 자주 사용되는 것이 실명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의 장애인 주인공들은 엄청난 극복 의지를 가진 이후에야 사회적 성공을 이루게 되는 극한 삶의 고통을 묘사하고 날씨 추워질 때 공익광고에 출연하는 불우이웃의 대표주자도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겠지만 모르는 사이에 대중의 뇌리에 박힌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는 미디어의 지속적인 이미지 형성 작업에 근거한 것이 틀림없다.


악역이긴 하지만 중복장애인인 후크선장에 캡틴의 이미지를 씌우고 드래건 길들이기의 중 인공이 의족을 사용하는 장면을 보고 자란 다른 나라 아이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른 것만 보아도 우리나라의 방송매체의 영향은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에 대한 옳지 않은 생각들을 주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 분명하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길을 다니다 보면 지팡이 짚은 내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천 원짜리 쥐어주며 눈물 흘리는 어르신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고 노약자 석이나 엘리베이터를 강권하는 이웃들도 수도 없이 만난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접하는 다수들로부터의 도움은 보고 배운 것에 충실한 따뜻한 선행이 분명하지만 나름 먹고살만하고 두 다리 튼튼한 내겐 아주 불편한 장면인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난 단지 눈의 상태가 다수와 조금 다른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를 인생이 불쌍한 사람쯤으로 여기고 다가오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따뜻한 의도도 훈훈한 결과로 귀결되기는 힘들다.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각 위주의 안내판들이나 도로의 설계가 나를 불편한 사람으로 만들기는 하지만 그런 몇 안 되는 장애요인만 적응하면 난 삶에 있어 평범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는 나의 다름은 특별한 능력이 되기도 한다.


유명 케이블 tv회사의 사용자 편의 기능 설계에서는 나의 의견으로 음성인식 기술을 완성하였고 최근에 발표된 인공지능 스피커의 기술 아이디어도 내 머릿속에서 생성된 것이 많다.


사물인터넷이나 빅데이터 따위로 설명되는 말하는 가전제품들은 시각장애인의 노하우로 만들어진 것들이 너무도 많고 자동차에서 손을 데지 않고 통화할 수 있는 핸즈프리도 그러한 연유로 계발이 시작되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오디오북이 대중화된 것도 시력이 불편한 조금 다른 소수가 아니었다면 계발은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지금보다는 훨씬 늦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오래된 전통가치에서의 장애인은 도와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고 장애 없는 이들은 스스로가 아는 대로 그들을 돕는 것을 선행이라고 여겨왔다.


요즘 좀 더 진보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은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확률적 사고이므로 주변의 장애인을 배려하고 돕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보험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말은 그 말대로 이 말은 이 말대로 맞을 수는 있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은 다르다.


지금은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형태로 삶을 영위하고 즐기면서 사는 다양성의 사회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조작해서 기기를 제어하기도 하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 음성으로 인공지능 비서를 호출하기도 한다.


이런 프로세스를 가장 잘 이해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평소에도 눈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이라고 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다름을 부족함이나 틀림이 아닌 다름 그 자체로 여기고 인정해 줄 때 이러한 혁신들은 시간을 앞당겨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도 난 여러 기업의 기술개발에 비시각 제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참여했고 그런 기술들은 현재 많은 가전제품에 적용되어 왔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대중교통이나 조용한 공간에서 사운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일정 부분 흥미요소를 포기하는 일일 수 있지만 소리 없이도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전문가는 청각장애인임이 분명하다.


난 그들을 비음성 콘텐츠 전문가라고 부르고 싶다.


서서 일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좌식 업무의 편의증진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전문가로 채용하면 가장 빠른 해결이 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모든 것들이 장애인들만을 위한 편의 기능이라 말하기도 하겠지만 난 절대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다.


무인자동차가 나온다면 나 같은 시각장애인들만 타고 다닐 것 같은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아직도 지체장애인 편의시설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수신호나 자막 서비스는 청각장애인들에게만 쓰이는 기술인가 말이다.


수백 년 전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는 어느 틈엔가 경제의 발전으로 개성을 중시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급격히 넘어갔다.


이제 사람들의 가치도 세상의 설계도 다수를 위한 틀에 박힌 획일적 설계가 아니라 다양한 소수들이 모두 편할 수 있는 환경의 설계를 위해 다양한 작은 가치들을 포용해야 할 때이다.


그것은 당신이 어느 순간에서도 편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 될 것 또한 분명하다.


다수를 위해 만들고 나머지를 장애라고 규정하고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은 머지않아 구시대적 가치가 되리라고 나는 강력히 확신한다.


세상에는 지금보다도 더 다양한 모습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출현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모른다.


장애인이 없는 세상은 의학의 발달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불편함 없는 환경의 설계로 이루어낼 수 있다.


다양한 다름을 장애가 아니라 소수 전문가로 인정할 때 세상은 좀 더 편리해질 것이다.


나는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25년 경력의 비시각 제어 기술 전문가이다.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나를 소개하겠다.


나라는 사람은 수학교사이기도 하고 여러 매체에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하고 작은 밴드의 보컬이자 작사가이며 가끔은 기타를 연주하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시력 없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는 25년 경력의 비시각 제어 기술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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