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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Jun 24. 2019

나도 보고싶다.

난 시각장애인이지만 행복하다고 말한다.

분명 무언가 다른 모양으로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것은 단지 시력과 관련한 것들에 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고도 말한다.

이런저런 힘든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나에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혹시 눈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시력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지나칠 정도로 당당하게 사는 내 모습을 보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내가 눈을 고칠 수 있는데도 시각장애인의 삶을 택하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시력을 되찾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라 여기기도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시신경 위축'이라고 진단 내려진 나의 시력 상태를 회복시킬 의학적 조치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약 내 시력을 회복시켜 줄 어떠한 새로운 방법이 계발된다면 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되어있다.

치료 불가라고 말하면 나의 정보 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나름 여기저기 이름 내밀고 살아가는 나의 활동 특성상 새로운 치료법의 발견이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가끔은 눈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계발 중이라며 이런저런 방법으로 연락을 취해 오시는 박사님들도 있었는데 아직 나의 상태가 그대로인 것을 보면 특별한 효과를 보지는 못한 것이 분명하다.

뉴스를 보다 보면 인간이 가진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비행기보다 빠른 기차가 계발되고 순간이동이나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들 입자를 발견했다고도 말한다.

무인자동차, 우주 엘리베이터, 개인용 인공위성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내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은 내가 어릴 적 보던 SF영화 속 기술들을 능가한다.

카메라 렌즈를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 꽃의 이름을 말하고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어떤 곳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도 설명해 준다.

사람들의 상상과 현실적 존재 여부 간에는 이젠 약간의 시간차가 있을 뿐 그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때마다 내가 가지게 되는 의문점이 하나 있다.

내가 실명을 하게 된 1993년과 현재인 2019년의 모든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술의 진보를 거듭했는데 내 시력과 관련한 의학적 기술은 체감적으로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몸을 다루는 의학적 영역이 다른 분야에 비해 특별히 복잡한 것이라고 이해하기엔 그동안 불치의 영역을 벗어난 질병에 대한 보고들이 너무도 많다.

'암'만 하더라도 그때와 지금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치료 가능성의 기대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

중추신경이라는 분야가 의학 중에서도 접근하기 힘든 부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기술 진화의 상대적인 느린 속도를 이해하기엔 나의 아쉬움의 크기가 너무도 크다.

늦어도 5년이나 10년 후에는 의학적 기술의 발달로 치료가 가능해질 거라고 말씀하시던 몇몇 의사 선생님의 확신에 찬 발언은 26년 지난 나의 의구심을 더욱 크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게 한다.

시각장애인들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과 학업을 수행하기 위해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보조공학기기를 사용하곤 한다.

문서를 작성하고 녹음을 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블루투스나 와이파이 연결까지 가능한 기기는 내게 있어서도 꽤 유용하고 고마운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러한 기기들의 부품을 뜯어보면 보드도 CPU도 그 밖의 대부분 구성품은 보통의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비해 몇 년 이상 뒤떨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수백만 원이라는 가격과 어울리지 않는 스펙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수요가 많지 않은 분야에 대한 기술개발 그리고 이윤을 내기 힘든 경제적 구조가 기본적인 원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연구하고 새 제품 개발해 주시는 관련 종사자 분들께는 늘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데 이런 보조공학기기들을 보다 보면 왠지 의학기술도 그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중증질환이나 미용 분야에 비해 장애 관련 분야는 관련 대상이 적고 그에 따라 관심을 받거나 큰 이윤을 얻기도 힘든 것이 발전 속도를 늦추는 원인이지는 않을까?

어디까지나 의학적 지식 모자라는 나의 주관적 주장이지만 생각할 때마다 진하게 아쉬운 부분이다.

세상은 변하고 장애 관련 정책도 발전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처럼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늘 어려운 과제이다.

단순한 접근이긴 하지만 관련 의학기술의 발달이 근본적으로 장애 없는 세상을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며칠 전부터 눈 앞에 뭔가 어른거리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가 갑자기 보이는 것도 아니고 큰 시력의 변화가 느껴지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 예약을 하고 왔다.

좁쌀만 한 변화에도 혹여나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나의 마음이고 장애로 불편하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더라도 소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에 좀 더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몇 년 전 어떤 박사님의 줄기세포 관련 발표를 기다리던 많은 장애인들의 기대감 넘치는 모습들을 기억한다.

20여 년 만의 병원 방문 날짜는 10월 2일로 결정되었다.

그 시간 동안의 나의 기다림도 그때 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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