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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Nov 22. 2018

제주도 낭만 같은 소리 하네

#8 일하지 않는 제주는 아름답지 않다

신혼여행을 남미로 다녀왔다. 싼 비행기표를 끊어서 경유에 대기를 거쳐 무려 63시간 만에 페루 마추픽추에 도착했다. 이동에만 사나흘이 걸리니 꼭 필요한 곳만 갔다 오는데도 열흘이나 놀았다. 제주 돌담을 쌓는 석공인 남편은 프리랜서다. 연차 같은 건 없다. 일한 만큼 번다. 그러니까 일용직, 남편은 자기를 '노가다(막일)꾼'이라고 부른다.


8년 전, 남편은 육지에서 옷 두 박스만 들고 제주로 내려왔다고 했다. 집은 연세(제주도는 1년에 한 번 집세를 내는 경우가 많다)를 내고 빌려 살았다. 그때만 해도 제주 땅값이 많이 오르지 않아서 연세 200~300만 원이면 방 2~3개짜리 시골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오래된 농가주택을 고치고 사는 조건으로 700만 원을 들여 공사를 하고 6년 임대 계약을 맺었다. 연세 100만 원 꼴이다. 그만큼 집은 허름하고 화장실은 외부에 있었으나, 남자 혼자 먹고 자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물론 연애를 시작하고 처음 집에 초대했을 때 나는 식겁했지만..)


집을 구했으니 돈을 벌어야 했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문화재 관련 회사에 다녔던 남편은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와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단다. 무공장, 당근밭, 집 짓는 현장 등등. 그러다가 지인 소개로 돌담 쌓는 현장에 가게 됐고, 시멘트를 비비는 데모도(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말로서 기능공을 돕는 조공)부터 시작했다. 2년을 비비며 어깨너머로 석공들이 돌 쌓는 걸 보고 배웠고, 3년 차부터는 부족하나마 석공으로서 일한 모양이다.


남편이 석공으로 일하고 있는 팀이 작업한 돌담. 요즘엔 거친 돌을 기계로 깎아서 이런 식으로 짜맞춘 듯한 담을 쌓기도 한다.


"돌담 쌓으면 돈 많이 벌겠네~ 일당 세잖아."


물론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들 이야기지만, 남편의 지금 일당도 섭섭지는 않다. 회사원처럼 주 5일 꼬박꼬박 일한다고 가정하면 그렇다. 하지만 야외에서 일하는 특성상 날씨에 출근여부가 달렸다. 비가 와도, 눈이 너무 많이 와도, 너무 더워도 못 한다. 그런데 제주도는 비도 많이 오고, 그해 강수량이 적었으면 눈이라도 많이 온다. 그러니까 일할 수 있는 날이 얼마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허리가 아프다고 곡소리를 하면서도 출근을 한다. 일해야 풀린다는 하얀 거짓말을 해가면서. 집에 오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팔다리엔 긁힌 상처투성이다. 무엇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흐르는 한여름 뙤약볕에 그 무거운 돌을 쌓고 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결혼 전에도 그는 집안 어르신처럼 내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걸 지나치게 강조했었다. 연애 초반에 나는 제주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통장잔고도 넉넉해서 아직 낭만에 취해 있었다. 놀러만 오던 제주도에 산다는 게 꿈같았다. 육지에서는 3년간 생리가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받으며 일했었다. 낭만이 가득한 이곳에서는 아등바등 살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 그는 늘 비웃곤 했다.


"낭만 같은 소리 하네. 여기는 사람 사는 곳 아닌가? 제주도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누가 밥 먹여주나? 여기는 더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야 돼~ 너는 이효리가 아니잖아."


어떻게 색깔이 저럴까 싶을 정도로 황홀한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어울리지 않는 일침들이 나를 쿡쿡 찔렀다. 나를 보호하고 있던 통장잔고가 바닥날 즈음에는 날아와 박히는 잔소리들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제주 이주 붐이 사그라진 요즘도 지역 인터넷 카페에는 입도를 앞두고 설렘 가득한 글들이 올라온다. 도시와 직장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제주는 여유롭죠? 빨리 가고 싶네요"라고 말한다. 3년 전 나도 비슷한 낭만을 품고 왔기에 그 마음을 안다. 도민들은 "돈 있으면 여유롭죠"라고 답한다. 이게 정답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실제로 살아본 제주도는 육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비싸고, 임금은 적다(2018년 9월 말 기준 월평균 임금 264만 9000원으로 전국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꼴찌). 인터넷으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도선료 3000원을 더 내야 한다. 


그렇다고 결혼 후 남편이 내게 일하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결혼하면서 빵집을 관두고 또다시 백수가 된 나는 언젠가는 다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식업과 숙박업 일자리가 많은 이 관광지에서 임신을 준비 중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건 한참 뒤에 알게 됐지만...


물론 낭만이 끼어들 틈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집 근처의 올레길을 걷고, 오름을 오르면서 "남들은 비행기 타고 오는데 우리는 아무 때나 올 수 있으니 좋다"는 정도로 제주살이의 묘미를 만끽한다. 풍광에 잠시 취해 있다가도 밥벌이를 위해 내 출근해야 한다는 걸 잊지 않는다. 일하지 않으면, 돈이 없으면, 이 섬의 아름다움도 즐길 수 없으니까. 노래 가사처럼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얽매이기 싫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로 떠나'는 건 관광객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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