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진 Nov 18. 2018

빵집을 차릴 수 있을까 2

#6 엄지발가락에 마비가 왔다

제주에 와서 얼떨결에 제빵사가 되긴 했는데, 역시나 중산간마을에서의 출근이 문제였다. 아빠가 2km 떨어진 정류장까지 태워다 준 덕분에 오전 7시 첫차를 탈 수 있었다. 버스로 30분 거리의 빵집에 출근하고 보니 모두 6시부터 일을 하고 있었다. 집이 먼 나만 7시 30분부터 일하는 것으로 '배려' 받은 것이었다. 왠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아 더 분주하게 움직이려 했지만, 뭐부터 해야할 지 우왕좌왕 했다. 


재료 계량, 반죽, 발효 후 분할, 둥글리기, 성형, 굽기까지 모두 학원에서 해본 것이지만 규모가 달랐다. 계량이 필요 없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밀가루 20kg짜리 한 포대를 다 털어넣고, 우유 5팩 역시 모두 쏟아부었다. 발효가 되면 부푼 반죽이 반죽통을 도망갈 것처럼 넘쳐 흘렀다. 모닝빵처럼 크기가 작은 반죽은 제빵사들의 손이 저울이었다. 


그걸 하나하나 저울에 달고, 확인하고, 내려놓는 신입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렇게 분할된 반죽을 발효가 잘 되도록 양손으로 정성껏 둥글리고 있는 나를 보고 사장님은 "학원에서 배운 티가 난다"고 했다. 그리고선 양손에 반죽 하나씩을 잡았다 놨을 뿐인데 동그랗게 된 결과물을 보여줬다. <생활의 달인>의 한 장면 같았다. 일단 나는 구워져 나온 빵에 잼이나 크림을 바르는 '시야게(마무리, 제빵용어는 일본어가 많다)' 같은 일을 주로 했다. 


그 빵집은 관광객 손님과 동네 손님 모두 많았다. 백 가지는 되어 보이는 종류의 빵을 1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만들어냈다. 점심은 빵집 윗층에 마련된 주방에서 먹었는데, 유일하게 앉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동으로 달디 단 밥을 마시다시피 먹었다.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었지만, "천천히 먹고 쉬다오라"며 먼저 일하러 간 사장님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작업장으로 내려오기까지 딱 7분이 소요됐다.


12시간 동안 7분여를 제외하고 내 몸무게를 짊어지고 있던 발가락이 저려왔다. 사무직으로만 8년을 앉아 일한 몸이 놀랐나 보다. 3주가 지나자 엄지발가락은 마비가 왔는지 움직여봐도 소식이 없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내가 이 막노동을 하려고 제주도에 온 게 아닌데... 내가 운영하고 싶은 빵집은 몇 가지 종류의 빵을 조금만 생산해 그것만 팔고 끝내는 소박한 곳이었다. 일은 새벽부터 점심까지만 한다. 돈보다 삶이 먼저다. 그당시 유행하던 '저녁이 있는 삶'을 설파하고 있는 나를 남자친구가 '그러시든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상과는 다른 노동환경에서 파김치처럼 시들어가는 나를 보고 남자친구도 "힘들면 그만하라"고 보탰다. 결국 나는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만두겠다고 했다. 처음 시작할 때 "여자분이 할 수 있겠어요?"라고 한 사장님의 우려에 부응(?)한 것 같아서 '힘들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3주 만에 퇴사하는 나를 배웅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한 달째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건너건너 소개로 알게 된 제빵학과 교수님이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해보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마침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이었고, 오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하드계열을 만들 거라는 말에 솔깃했다. 엄지발가락의 신경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지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빵집으로 출근을 했다.


나보다 4살이나 어리지만 경력은 10년 가까이 된 팀장님은 역시나 내가 여자라서 걱정했다. 그동안 "빵을 좋아해서 만들고 싶다"고 겁없이 덤볐다가 한 달만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여직원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고 했다. 월급이나 근무환경 등 조건은 전보다 훨씬 좋았기에 꼭 일하고 싶었다. 카페에 딸린 베이커리라 종류도 훨씬 적었고, 배울 수 있는 시간도 있었으며, 무려 메뉴를 개발하는 데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기계처럼 100개가 넘는 빵에 잼을 바르는 일은 더이상 하지 않았다. 이제야 진짜 제빵사가 된 것 같았다. 


대신 책임이 따랐다. 재료를 잘못 계량하거나, 발효가 너무 이르거나 혹은 빠르거나, 성형을 제대로 못하거나, 오븐온도를 잘못 맞추면 빵은 그 실수를 그대로 결과물에 드러내 놓았다. 외우거나 정신을 잘 차린다고 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모든 것은 경험으로 축적된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반죽은 매번 다른 발효속도와 손놀림, 오븐온도를 필요로 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하드계열 반죽은 더더욱 민감해서 잘못 만지면 '푸슉~'하고 생명을 다 했다. 하수가 만진 반죽은 구워도 딱딱하고 맛이 없었다. 내가 만든 못생긴 바게트만 손님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진열대에서 굴러다니는 날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이게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맞을까?' 같은 고민만 반복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가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해줬다.


"결혼하자."



이전 06화 빵집을 차릴 수 있을까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