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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Mar 29. 2019

아빠의 암 선고를 듣고...

#12 육지에 살았으면 안 아팠을까

부모님이 건강검진을 한 지 2년이 지났다. 3년 전 제주도로 이사 와서 한 번 했지만, 위내시경은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검사를 한 지는 4년이 지난 셈이다. 지난해 7월 초, 두 분의 건강검진일에 나도 함께 갔다. 보호자 없이는 수면내시경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다. 아빠의 내시경까지 끝나자, 담당의사가 나와 아빠를 불렀다.


"식도 상부에 암으로 의심되는 덩어리가 보여요. 조직검사를 해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제 소견상 초기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덧붙인 말은 일말의 위로였을까. 아빠는 아직 가수면 상태인 건지, 충격을 받은 건지 무표정이고 나는 일단 '암'이라는 단어만으로 귀가 먹먹해졌다. 의사가 몇 마디를 더 한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의사의 어감이 "콧물이 나오는 걸 보니 코감기네요"를 말할 때와 같이 대수롭지 않았기에 '초기'라는 그 확신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아들이고 싶어 졌다.   


상담실을 나와서 엄마에게 최대한 담담히 이 사실을 전했지만, 역시나 엄마는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아빠를 의식해 호들갑은 없었다. 우리는 초연하게 남은 치과검사를 마치고, 센터 앞 가게에 들러 국수까지 한 그릇씩 먹고선 별다른 대화 없이 집으로 왔다. 


사실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 올해 68세인 아빠는 무려 50년 경력의 흡연자다. 게다가 제주도에 와서는 저녁식사와 함께 꼭 소주 반 병씩 곁들이는 걸 매일의 낙으로 여겼다. 목구멍에 술과 담배연기를 참으로 꾸준히 퍼부은 세월을 생각하면 식도가 건강한 게 이상할 지경이 아닌가. 



어릴 적부터 내 소원은 아빠의 금연이었지만, 물론 이루어진 적은 내가 알기로 하루도 없었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 당시 내게 고가였던 13만 원짜리 금연초와 눈물 없이 읽기 어려울 절절한 편지를 아빠 책상 위에 놓은 적도 있는데, 야속한 아빠는 금연초도 피우고 담배도 피웠다. 모든 애연가들의 믿는 구석이 '평생 담배 피우면서 100살까지 장수한 노인'이듯이, 아빠의 롤모델도 늘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노인이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식도암 관련 정보와 후기를 밤새도록 읽으며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갔다. 아빠와 비슷한 환자의 치료 경과가 좋으면 잠깐 안심했다가도, '몇 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전이가 됐다' 등의 무시무시한 후기를 맞닥뜨리면 울기를 반복했다. 일단 치료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했다. 문제는 우리가 제주도라는 섬에 산다는 것. 여기에도 암센터가 있지만 아빠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받길 원했고, 가족 모두 이에 동의했다. 환자의 '믿음'이란 약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거니까.


이런저런 검사만 여러 개였고, 날짜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 할 수 없이 비행기를 타고 병원에 갔다 오는 당일치기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이때 키 165cm 아빠의 몸무게는 고작 52kg이었다. 병원에서 대기하고, 공항에서 대기하고, 그러다가 밥때를 놓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녹초가 된 아빠의 살 없는 바지가 바람에 팔락였다. 암보다도 병원에 왔다 갔다 하다가 몸이 축나겠다고 엄마와 나는 애가 말랐다. 불행히도, 검진센터 의사의 소견은 틀렸다. 아빠의 암은 초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제주도 가겠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아프기는 왜 아파! 제주도 갔으면 좋은 공기 마시면서 운동이나 할 것이지 술 담배를 왜 해! 서울 살았으면 좋은 병원이 새고 샜는데, 왜 하필 제주도에 가서...!"


고모는 전화로 울듯이 퍼부어댔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아빠는 암 진단을 받기 몇 개월 전에 보험까지 해약했다. 평소 '보험 신봉자'인 고모는 이 대목에서 거의 까무러쳤다. 아빠는 매일 받아야 하는 방사능 치료를 위해 수원의 고모 집에 머물기로 했다. 집이 아닌 곳을 불편해하는 아빠의 성격 상, 매 주말마다 제주도로 내려왔고 월요일에 다시 올라가기를 계속했다. 원정 치료는 추석이 지나 끝났지만, 어딘가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세포까지 죽이기 위한 몇 번의 방사능과 약물치료를 더 받으러 겨우내 육지와 섬을 오가야 했다. 봄이 되어서야 항암은 '일단락'되었다. 이것이 완치를 의미한다면 바랄 것이 없으련만, 3개월마다 검사 성적표를 받아야 하는 진짜 싸움의 시작이었다. 


제주도 물가가 높은 것도, 임금이 낮은 것도, 가끔 서울에 가고 싶은 것도 푸념을 하며 버틸 수 있다. 다만, 이번 시련은 아무 연고도 없는 이 섬에서의 삶을 휘청이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건강한 노후를 위해 큰 맘먹고 온 곳에서 암에 걸리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 육지에 살았다면 아프지 않았을까, 아니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했을까, 혹은 더 나은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건강에 자신하며 온갖 해로운 것들을 축적해 온 세월의 산물이 아빠의 목에 종양으로 돋아났는데 누구를 탓할 것인가. 결국 갈 곳 잃은 원망들이 부메랑처럼 내게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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