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취향대로 제각각인 그릇들
지극히 사소한 나의 일상 #8
신혼이라면 으레 갖추어야 할 그릇 세트를 나는 갖추지 못했다. 일단은 무엇을 사야 할지 몰랐고, 남들이 다 사는 건 사기 싫었으며, 무엇보다도 말끔하게 갖춰진 ‘세트’란 개념이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를 갖춘다면 이는 말끔한 ‘세트’가 아니라 세월에 따라 하나둘 갖춰진, 다소 통일성은 없지만 주인의 어수룩한 취향이 반영된 그 어떤 것이었으면 했다. 마치 외할머니의 정겨운 밥상처럼.
이 무슨 쓸데없는 고집인가 싶지만, 그래도 최근 들어 하나둘씩 구색을 갖춰나가고 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릇 몇 가지만 여기에 소개한다.
밥공기는 약간의 푸른빛이 도는 도자기가 좋다. 높이는 낮아서 조금만 많이 퍼도 고봉밥으로 보여야 한다. 지나친 탄수화물의 섭취도 막아줄 겸.
국그릇 밥공기와 그 짝이 맞되, 깊이는 반대로 깊어야 한다. 나는 국이 좋다.
오븐과 전자레인지 사용이 가능한 손잡이가 달린 사각 접시는 정말 유용하다. 아침에는 샐러드 야채를 담아 견과류와 드레싱을 뿌려 내놓고, 저녁에는 고등어를 담아 오븐에 돌린다. 전날 먹다 남은 토마토스파게티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올려 오븐에 돌리면 점심 식사도 해결된다.
앞접시는 주변에 꽃무늬가 자글자글 놓인 것이 좋다. 친정엄마의 찬장에서 훔쳐 온 느낌이 있어야 한다.
술잔은 와인잔과 맥주잔을 겸용하는 투명한 것이 좋다. 다만 손잡이 부분이 두꺼워야 설거지 중에 똑 부러지는 참사를 막을 수 있다. 벌써 몇 개째 해 먹었는지 모른다. (2024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