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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분 Jul 31. 2021

수박을 먹다가

아빠의 숟가락



바야흐로 수박의 계절이다.​


한 손에 단단히 칼을 쥐고 힘을 실어 반을 가른다.

쩌억-,

하고 새빨간 속살을 가감없이 드러낸 수박이 기분좋은 단내를 풍긴다.

​​


와, 오늘 수박 좋은데?

​​


신이 난 손이 갈라진 수박 위를 빠르게 왔다갔다하며 먹기좋게 조각을 낸다. 둥그런 껍질을 따라 빨간 과육을 발라내다 잘라낸 조각을 보는데, 언뜻언뜻 하얀빛이 비친다.

영 달갑지 않다. 이번에는 조금 덜 깊게 칼을 꽂는다.

탁, 탁, 탁, 야무지게 잘라 날카롭게 살펴보니 조각조각이 빨갛기만한 것이 벌써부터 입안이 달다.​


만족스럽게 수박손질을 끝내고 치우려는 찰나,

수박껍질에 남아있는 과육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귀에 들리는 음성 하나.

​​


"북한 주민을 생각해-!"

​​


아빠다.

​​


처음에는 아프리카 아이들이었던 것도 같다.

음식이 남을 때마다 아빠는 입버릇처럼 북한 주민과 아프리카 아이들을 외며, 드실 수 있는 최대한의 선에서 남은 음식을 본인의 입으로 처리(?)하셨다.​


식사로 준비한 음식이 남았을 때는 물론, 딸들이 먹다 남긴 빵, 떡, 과자같은 것들까지도 죄다 아빠 몫이었다.

과일을 깎고남은 부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잘라내고 남은 수박껍질은 결코 그냥 내다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


맛만 있구만!

​​


하면서 숟가락을 든 팔에 힘줄까지 세워가며 깨끗이도 긁어드셨다. 나와 동생들은 연신 새빨간 조각을 입에 밀어넣으며 아빠에게 소리쳤다.​


아빠, 그걸 왜 먹어. 여기 맛있는 거 먹어!

​​


그러면 항상 돌아오는 한 마디.

북한 주민들을 생각혀!

아빠의 숟가락은 더이상 빨간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


그리고 며칠 전 수박 한 통을 새로 사온 날, 그 숟가락이 이제는 내 손에 들려있었다.​


가지런히 잘라 둔 수박조각을 옆에 두고 수박껍질을 붙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선 너털웃음이 나왔더랬다.​


맛도 없구만, 참.

​​


중얼거리면서도 쉬이 숟가락을 놓지 못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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