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우리집은 더이상 나의 우리집이 아니다
우리집.
이 말처럼 엄마와 나 사이에 다른 세상이 들어서있음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말이 또 있을까.
30년 동안 내게 '우리집'이었던 그 곳은 이제 '엄마집'이 되었고,
남편과 아들이 있는 지금 이 곳이 '우리집'- 내 쉴 곳이 되었다.
세월은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모습이 드러난 세월은 왠지 모르게 서글프다.
아들의 탄생으로 한층 더 기쁨 가득한 시간들이 열렸지만,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가슴 한 켠이 저릿해지는 이유일 게다.
엄마가 오고 나서 집은 색다른 온기를 띄었다.
온갖 잡동사니로 차있던 방은 엄마의 잠자리로 바뀌어 밤이면 보일러 스위치 누르는 게 내 하나의 일과가 되었고,
좁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주방은 끼니마다 새로운 음식냄새로 가득차 꽤 쓸만하게 느껴졌다.
왠지 밟기 싫었던 베란다 바닥은 그 곳에서 간단한 손세탁 후 물청소로 끝마치는 엄마 손길에 깨끗해진 냄새가 났다.
미처 둘 곳이 없어 거실 한 켠에 자리잡은 엄마 화장품들과 드라이기는 너저분해보이기보다 매일 씻고나서 힘을 내는 엄마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엄마는 체력이 약하다.
그만큼 마음도 약해서 우리집에 오고난 뒤 아빠와 동생 끼니 걱정에,
그리고 (아마) 100일 전까지는 장거리를 이동할 수 없다는 내 단호함에,
식구들과 떨어져있어야 하는 서글픔에 몇 번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내 잠이 부족할까봐,
내가 옷을 얇게 입고 있다가 산후풍이 들어 나중에 고생할까봐,
산모인 딸이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 챙겨먹어야 회복이 잘 되니까,
사위가 덜 힘들어야 엄마 딸도 덜 마음 쓸 테니까,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아팠던 어깨로 덕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며 놀아주고,
해도해도 끝이 없는 자질구레한 집안일들로 하루종일 바빴더랬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며 지켜야할 것 투성이인 딸집에서 한켠으로 서럽기도 했겠다.
그다지 살갑지 않은 딸이 제 남편과 아들에게 지극정성인 것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서운하기도 했을 거고.
ㅡ그걸 알아 뒤에 항상 후회하면서도 막상 엄마와 함께 있을 때면 불퉁스러워지는 미련함은 어찌해야 할까?
우리집을 돌봐주던 엄마는 한 달이 조금 넘어 엄마의 집으로 돌아갔다.
고생할 딸과 사위가 눈에 밟혀 가는 길에도 눈물을 흘린다.
엄마가 가고 난 우리집에서 내 눈에도 눈물이 차오른다. 소리내어 우는 내 모습에 아들녀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에도 엄마와 나는 각자의 집에서 다시 또 그만의 시간을 채워간다.
따로, 또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