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 모두가 받았을 편지
아들에게.
아들아.
너의 이름이 아닌 말, 그 중에서도 특히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모든 것 제쳐두고 내 품에 달려들기를 바라는 욕심이 가득 담긴 '아들아'라는 말로 부르는 것은 되도록 참아보자 하면서도 이번만큼은 맘껏 불러보고 싶다.
짧고도 긴 하루가 끝나고 어느새 안방을 가득 채운 밤기운.
곤히 잠든 너의 얼굴을 보는데 문득 그 앞에 살포시 모여있는 네 두 손이 못내 사랑스럽다.
보드라운 손 위로 내 손을 살짝이 포개보니, 잠들기 어려워질 지경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네가 정말 내 아들로 온 것이냐,
이리도 맑고 고운 얼굴을 하고서 내 하루를 짧게도 길게도 만들러 왔구나,
어쩜 내게서 너같이 어여쁜 아이가 나왔을까,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최고로 좋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백 개 천 개를 준다고 해도 너를 만난 이 기쁨에 비할 바는 아니다.
때로는 이 과분하다 느껴지는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누구와든, 무엇이든 나누어야만 할 것같은 생각에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그저 나 하나 똑바로 살면 된다며 앞만 보고 지내온 성정이 그 압박을 못 이겨하는 탓일 게다.
사랑하는 내 아들.
너를 안고 처음 밖으로 나서던 날 세상은 온통 위험으로 가득해 보였다.
멀찍이서 제 갈길 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혹여나 부딪쳐 네가 놀랄까봐 너를 안은 어깨를 한껏 움츠렸었다.
넘어져서도 안되고, 넘어지더라도 너만은 지켜야 한다 생각하니 내 두 팔과 두 다리는 또 어찌나 못미덥던지.
심지어는 마음속으로 화를 내는 것조차도 너에게 좋지 않은 기운이 닿을까 머리를 흔들며 화를 털어내기도 했었다.
너를 안은 나는 세상 앞에 한없이 약해져 있었다.
너를 지키려면 약해져야 했다.
어떤 나쁜 것이든 우리를 스치기조차 힘들 정도로 아주 작고 약해지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나는 동시에 아주 강해져 있었다.
네가 세상에 나오던 날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너의 탄생을 누구보다 힘차게 응원했다.
하루 온종일 너를 안고도 내 몸은 무너져내리지 않았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너를 안아줄 수 있었다.
쏟아지는 새벽잠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권태도 너를 안은 나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네가 세상이 따뜻하고 즐거운 곳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왔다, 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저 좋아서 어쩔 줄 모를 하루들을 보내게 하는 너에게 보답하려는 마음이었다, 정도면 될까.
내 품이 너에게 좁아질수록 너는 너의 길을, 나는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겠지만, 아마 네가 나의 아들인 한 내가 다시 아주 작고 약해지는 그런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겠지.
꿀같은 잠에 빠져서도 제법 크게 오르내리는 너의 배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의 햇살, 돌아누운 너의 작고 단단한 등, 그 위로 덮고있는 담요와 나도 몰래 새어나온 이 웃음까지ㅡ이것이면 그런 순간들을 무사히 지나기에 충분하겠다 싶다.
너로 인해 약해지고 강해지는 이 삶을 살게 해주어 고맙다.
내 아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내 아들아.
이미 너는 너의 삶을 살고 있음을, 그 하루들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그저 기꺼운 마음으로 응원한다.
다만 이따금씩은 엄마 아빠의 시간이 너의 삶을 여는 데 작은 톱니하나 정도는 굴려주었음을 떠올려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2021년 여름 어느 낮,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