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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분 Aug 10. 2021

아들에게 쓰는 편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받았을 편지



아들에게.​​



아들아.



너의 이름이 아닌 말, 그 중에서도 특히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모든 것 제쳐두고 내 품에 달려들기를 바라는 욕심이 가득 담긴 '아들아'라는 말로 부르는 것은 되도록 참아보자 하면서도 이번만큼은 맘껏 불러보고 싶다.​​


짧고도 긴 하루가 끝나고 어느새 안방을 가득 채운 밤기운.

곤히 잠든 너의 얼굴을 보는데 문득 그 앞에 살포시 모여있는 네 두 손이 못내 사랑스럽다.

보드라운 손 위로 내 손을 살짝이 포개보니, 잠들기 어려워질 지경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



네가 정말 내 아들로 온 것이냐,

이리도 맑고 고운 얼굴을 하고서 내 하루를 짧게도 길게도 만들러 왔구나,

어쩜 내게서 너같이 어여쁜 아이가 나왔을까,​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최고로 좋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백 개 천 개를 준다고 해도 너를 만난 이 기쁨에 비할 바는 아니다.

때로는 이 과분하다 느껴지는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누구와든, 무엇이든 나누어야만 할 것같은 생각에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그저 나 하나 똑바로 살면 된다며 앞만 보고 지내온 성정이 그 압박을 못 이겨하는 탓일 게다.​



사랑하는 내 아들.



너를 안고 처음 밖으로 나서던 날 세상은 온통 위험으로 가득해 보였다.

멀찍이서 제 갈길 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혹여나 부딪쳐 네가 놀랄까봐 너를 안은 어깨를 한껏 움츠렸었다.

넘어져서도 안되고, 넘어지더라도 너만은 지켜야 한다 생각하니 내 두 팔과 두 다리는 또 어찌나 못미덥던지.

심지어는 마음속으로 화를 내는 것조차도 너에게 좋지 않은 기운이 닿을까 머리를 흔들며 화를 털어내기도 했었다.​



너를 안은 나는 세상 앞에 한없이 약해져 있었다.

너를 지키려면 약해져야 했다.

어떤 나쁜 것이든 우리를 스치기조차 힘들 정도로 아주 작고 약해지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나는 동시에 아주 강해져 있었다.

네가 세상에 나오던 날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너의 탄생을 누구보다 힘차게 응원했다.

하루 온종일 너를 안고도 내 몸은 무너져내리지 않았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너를 안아줄 수 있었다.

쏟아지는 새벽잠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권태도 너를 안은 나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네가 세상이 따뜻하고 즐거운 곳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왔다, 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저 좋아서 어쩔 줄 모를 하루들을 보내게 하는 너에게 보답하려는 마음이었다, 정도면 될까.​​​



내 품이 너에게 좁아질수록 너는 너의 길을, 나는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겠지만, 아마 네가 나의 아들인 한 내가 다시 아주 작고 약해지는 그런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겠지.

꿀같은 잠에 빠져서도 제법 크게 오르내리는 너의 배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의 햇살, 돌아누운 너의 작고 단단한 등, 그 위로 덮고있는 담요와 나도 몰래 새어나온 이 웃음까지ㅡ이것이면 그런 순간들을 무사히 지나기에 충분하겠다 싶다.​​​



너로 인해 약해지고 강해지는 이 삶을 살게 해주어 고맙다.

내 아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내 아들아.​​​

이미 너는 너의 삶을 살고 있음을, 그 하루들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그저 기꺼운 마음으로 응원한다.



다만 이따금씩은 엄마 아빠의 시간이 너의 삶을 여는 데 작은 톱니하나 정도는 굴려주었음을 떠올려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2021년 여름 어느 낮,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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