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는데,
어제의 나를 돌아보면 왜 항상 아쉽게 느껴질까?
아이가 물을 엎질렀을 때 좀 더 부드러운 눈빛으로 괜찮다고 말해주었더라면.
잠자리에서 책 한 권만 더 보자고 했을 때 기분좋게 그러자고 답해주었더라면.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 알람에 시선을 뺏기지 않았더라면.
아이의 얼굴에 맑은 웃음이 떠오를 때면 그 아쉬움은 더 날개를 단다.
그 맑음 위로 먹물을 한 방울 튀겨버린 것마냥 죄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나는 왜 이 아이가 나에게 주는 것처럼 순결한 사랑을 주지 못하는가.
아쉬움이 이런 한탄으로 바뀔 쯤엔 지난 순간들을 깨끗이 지우고 새로 쓰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오른다.
문득 한 노래가 떠오른다.
꿈으로 가득차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사랑 중에서도 으뜸은 아이와 나누는 사랑이다.
불순한 의도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다.
그저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이는 아무런 계산이나 심지어 의지도 없이 더 큰 사랑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말간 웃음 한 번이면 지금까지의 문제는 다 사라지는 듯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준다.
내 손에 닳아지지 않는 지우개를 들려주는 것만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깨끗이 지워지는 지우개라도 계속해서 쓰다 보면 종이는 닳아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글자는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한 번 실수를 하고 나면 다음은 더 조심하면서 쓰는 것이 흠집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희미하게 남은 흔적 위로는 더욱 곱고 어여쁜 그림을 덧그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하여,
길바닥에 드러누운 아이에게 뭐하는 거냐며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아이 얼굴 위로 드리운 햇살을 가려줄 방향을 골라 선다.
서툴게 쌀을 푸다가 샅샅이 흩어지는 쌀알들을 눈으로 쫓으며 속으로 한 숨 크게 들이쉬고 다시 아이에게 쌀컵을 건넨다.
사방으로 튀는 오줌방울을 개의치 않는 척 조용히 닦아내며 (나름) 부드러운 목소리로 변기가 저 한쪽에 있음을 한 번 더 상기시켜준다.
그렇게 내 손에 들린 지우개가 조금씩 작아지다 보면 지워야 할 것들도 적어질 때가 오리라.
그러고나면 곧, 아이와 무언가를 쓰는 일이 더 이상은 내 몫이 아닐 때가 오리라.
그 때가 되면
남편과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생 많았다고,
이 정도면 우리 참 잘해냈다고 말해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