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하루를 보내고 맞이한 저녁.
아이는 나와 함께 침대에 누워 책을 두어권 읽은 뒤,
토끼와 멍멍이 그림자를 불러내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보내준 다음,
생각나는 사람들을 몇 번이고 부르며 무엇을 하고있을지 궁금해하다가-이 때 아이는 꼭 내 얼굴을 양손으로 야무지게도 감싸쥐고 있다-,
이내 머리며 귀며 엉덩이까지 이곳저곳 긁어달라 하고선 그 손길에 취한 듯 스르르 잠이 든다.
하루 중 가장 포근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서 잠들었으면 하는 조급함이 스며들어있는 시간이다.
그 조급함은, 우리가 언제나 그렇듯, 익숙함이 소중한 순간을 잠식해서 생기는 것이리라.
종종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싶으면 어서 자라며 짜증섞인 목소리로 재촉하곤 한다.
그러고는 맑디맑은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꼭 후회하는 것이다. 아, 조금만 더 참을 걸.
오늘 아이는 잠들기 얼마 전, 내게 돌아누우라고 했다.
평소에는 꼭 자기쪽을 보고 누우라고 하던 아이라 의아해하며 돌아누웠다.
아이의 손이 내 등을 토닥인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엄마를 재워준다며 부드럽게도 손을 놀린다.
몇 번 두드리면 팔이 아파 그만둘 법도 한데 제법 열심이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가 싶더니, 아이의 손길이 등을 뚫고 심장까지 토닥이는 듯한 느낌에 눈물이 왈칵 차오른다.
아, 나는 오늘 위로를 받았구나.
그저 토닥임 몇 번일 뿐인데, 아이의 손을 거치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는 발끝마다 꽃이 피는 것같아 내 걸음마저 새롭게 느껴졌다.
아이가 흥에 겨울 때 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춤사위는 어떤 이든 웃게하는 묘약으로 보였다.
아이가 엄마! 하며 나를 힘차게 부를 때는 온 세상에 엄마가 나밖에 없는 듯 뿌듯함이 가슴가득 차올랐다.
그 뿐이랴.
모두 함께 숨쉬는 공기마저도 아이의 손과 눈과 입을 거치면 그것은 오직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선물처럼 느껴진다.
오늘 내 등을 토닥이던 그 작은 손길은 순식간에 내 가슴 한가운데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그 나무가 아이와 함께 자라나 언젠가는 내 몸 구석구석 어디 하나 안닿는 곳이 없게 되면,
그 때는 아이의 가슴에도 새로운 나무를 심어야할 때가 가까워질 테다.
그 때가 되면 아이를 통해 보았던 아름다운 세상들이 나를 살아가게하는 힘이 되리라.
그 때는 이미 내 품을 벗어나 어른이 되었을 아이에게도 내가 본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기를 지긋하게 바라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