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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림 Jan 11. 2024

2. 내 명식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내 사주는 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딱 봐도 화 비겁과 토 식상의 기운이 강해서 건조한 느낌마저 든다. 천간에 병화가 두 개나 있다. 원래 태양은 하나여야 하는데 저렇게 쌍으로 뜨면 불길한 거 아닐까? 지지는 술토가 세 개나 나란히 있어 그야말로 마르고 광활한 벌판에 외롭게 서 있는 셈이다. 화기운은 저 많은 토기운을 생하느라 진이 다 빠져 비실대고 있다. 시지에 있는 수기운은 토기운에 갇혀서 힘도 못 쓰고 쪼그라들고 있다. 나에게 수 관성은 남자, 남편을 가리키는데, 이렇게 기운이 없으니 어떻게 하지? 결혼을 늦게 하면 좋다고요? 게다가 말로만 듣던 무시무시한 백호살이 두 개나 있다. 사고수가 있는 살이라고 하던데 운전도 하지 말고 집에 꼼짝않고 있어야 할까보다. 


20-30대 때 엄마가 사주를 보고 오시거나 때로는 내가 상담을 받았을 때 흔하게 나오던 이야기들이다.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는 멘트들을 듣노라면, 자존감도 함께 낮아지곤 했다. 그야말로 공포명리의 샘플로 내 명식은 딱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주공부를 조금이나마 해본 뒤에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병화인 나는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술토 지장간 속 정화의 지원에 힘입어 기운을 낸다는 것을. 또한 나에게 많은 식상 토기운은 무겁고 부담스러워 기피할 요소가 아니라, 마음껏 활용해야 하는 기운임을. 이 현대사회에서 나는 내 목소리를 열심히 내면서 저 화기운과 토기운들을 마음껏 풀어헤치며 살아왔다는 것을 오십이 넘어서야 알게 된 것이다. 특히 토 식상이 넉넉해서, 말하고 글을 쓰고 미술 작업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후배들을 다독이는 일이 잘 맞다는 것을. 그리고 백호살 또한 위기시에 힘을 발휘하는 추진력과 해결력을 뜻한다는 것을.


사주명리 수업을 이끌어준 현묘샘은 신살, 12운성, 공망, 격국, 조후, 합화, 충 등을 살피지 않는다. 이걸 보지 않고도 원국의 목소리와 대운 및 세운의 상황, 용신 그리고 내담자가 걸어온 인생 이야기를 조합하면 충분히 풀어낼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고급반, 전문반에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분들의 명식들을 앞에 놓고 위 요소들만을 가지고 분석해보고 있다. 


현묘샘의 관법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첫번째, 용신 중에서 억부용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명식에서 어떤 오행이 가장 강한지 결정하고, 기운을 눌러서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보완하려 한다. 물론 음기가 아주 강한 명식, 금&수기운이 너무 많아 차가운 명식 등일 경우에는 음양용신이나 조후용신을 쓸 때있지만 극히 드문 편에 속한다. 


두 번째, 용신을 찾았다고 해서 희용기구한의 역할을 고정시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내담자의 삶을 잘 살피다 보면 자신에게 많은 기운, 즉 기구신이 사주의 중심기운이며 이 기운이 사주의 본질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중심기운인 기구신을 쓰면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인데, 특히 이 기운을 쓸 수 있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내 삶의 지팡이 역할을 하는 용신은 기신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하도록 돕는 도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 번째, 원국에서 자리와 거리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묘샘은 일간을 중심으로 일지, 월간, 시간의 자리를 'T존'이라고 명명했다. 이 자리는 그 사람이 평생 써야 할 기본 도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는 오행과 십신은 희용기구한에 얽매이지 말고 어떻게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하면 좋다. 


네 번째, 대운, 세운, 월운의 의미와 성격을 원국과 겹쳐 살펴보면서 그 사람의 욕망과 길흉 등을 잘 알아낼 수 있다. 사주를 읽어낼 때 이중 특히 대운의 방향성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오행으로 대운을 볼 때(예를 들어 화대운, 수대운일 때), 십신으로 대운을 볼 때(인성대운, 식상대운 등) 등으로 나누어 의미를 살핀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스승님이 제안한 '묘운'에 대해서도 정리해보고 싶다. 


이제야 아주 조금 내 사주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공부를 해야 내 사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어쩌면 완벽하게 그 모두를 잘 듣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유의지의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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