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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니 Oct 09. 2021

내 친구 산드라

How Sandra Lives Life


소피: 하이~! 미은 어서 와. 여긴 산드라, 우리 카페 매니저야.

나: 하이~! 산드라 나는 미은 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호주 생활 2년 차에 바리스타Barista 였던 나는 소피 언니가 일하던 베이커리 카페의 쿸Cook 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정식 출근 전 주방을 둘러보러 들렸다 자연스럽게 산드라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엄마 또래쯤 되어 보이던 산드라와 나는 처음 만나게 되었다.


정식으로 일하기 전 보스와의 인터뷰가 있는 날 매장에서 산드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주말이라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신 커피를 뽑느라 정신없어 보이고 약간은 지쳐 보이던 산드라가 헥헥 거리며 말했다.


산드라: 하이 미은! 보스 지금 안에 있는데 불러 줄게. 잠깐만 기다려 잠깐만.

어머! 그런데 너 지금 완전 흰옷이네?

(순간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마음은 당장

1초 만에라도 집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요술의 힘은 내게 없었다.)


보통 호주에서 서비스직Hospitality 일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머리부터 발 끝까지 검은색 옷을 입는다.

그런데 오늘은 인터뷰 일정이었고 따로 트라이얼

(몇 시간 잠시 일해보는 것) 얘기도 없었기에 최대한 깔끔하게 입고 간다고 갔었는데,

그렇게 나는 산드라를 제대로 당황시켰다.


첫 출근날


호주에 산지 겨우 1년밖에 안되었던 나는 여러모로 호주 문화에 많이 서툴렀고 부족한 영어로 늘 마음이 조급 했던 나는 일로서 그것을 만회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에서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에 몰두했고 그것이 때로는 주변의 호주 친구들을 당황시키게 만들었다.


모르는 건 즉각 즉각 물어보는 스타일이라 누구보다도 여유로운 호주 사람인 산드라를 나는 첫날부터 울상 짓게 만들었다.


딱히 물어볼 사람이 없어 매니저인 산드라를 졸졸 쫓아다니며 질문하니 산드라가 대답했다.


산드라: 오 미은, 너 정말 나랑 개리랑 잠시도 얘기를 못 나누게 하구나. 휴

(5평쯤 안 되는 베이커리에서 홀 직원은 3명, 주방에는 나 한 명, 아침 7시 가게에 한 명 있는 단골손님과 수다를 떠는 중인 매니저에게 일에 대해 물어보는 게 도대체 뭐가 문제지라고 그때는 생각했었다.)


그리고도 며칠간 허둥지둥 급하게 서두르며 생각하던 일이 하나라도 예상에서 벗어나면 발작을 일으키는 나를 보며 산드라는 말했다.


산드라: 미은, 플리즈 캄댜운 Please Calm down. 괜찮아. 아무 일도 안 생길 거야. 다 괜찮을 거야.

Take it easy.


그렇게 산드라는 내가 이 작은 주방에서 잘 스며들 수 있게 또 같이 속도를 맞춰 갈 수 있게 늘 옆에서 도와 주었다.


아침 7시

출근을 하면서부터 한숨을 크게 내쉬며 들어오는 산드라를 보며

처음에는 정말 힘든가 보다 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알고 보니 한숨은 산드라의 숨쉬기와도 같은 습관이었다.


이상한 손님이 엉뚱한 소리를 하며 직원들을 당황시키는 날에는 우리의 산드라가 출동해야만 했다.

그럴 때면 산드라는 주방에서 카페 홀로 나가는

순간까지도 노우~노우~ 를 외치며

나도 나가서 말하기 싫어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마치 밖으로 끌려가듯 나갔다.


그리고는 카페 안에 80년대 디스코 음악이 빵 빵

터져 나올 때면 한 손에는 접시를 들고

한 손은 있는 힘껏 하늘을 찌르며 디스코 춤을 췄다.


자랑스러운 스코트랜드Scotland의 딸인 산드라는 스코틀랜드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이 주방에서,

이 작은 호주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게 아주 즐겁고 좋았다.


그리고 어느 스쿨 홀리데이 시즌이었다.

호주에 오기 전에 들어는 봤지만 직접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출근을 했는데 산드라가 웬 꼬맹이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12살 된 막내 손자 리험이었다.

방학이라 할머니 집에 놀러 온 아이들 중 리험은 집에 다시 돌아가지 않고 할머니를 따라 카페로 출근했다.

꼬마애가 할머니 직장에 따라왔으니 어리광 부리거나 걸리적거릴 만도 한데 웬걸

앉아서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산드라를 졸졸 따라다니며 열심히 설명을 듣는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호주에서 늘 느끼는 거지만 아이들이 참 성숙하다. 리험은 마치 트라이얼 온 친구 같이 일을 하고 산드라는 마치 새로운 직원이 온 것 마냥 일을 시켰다.


리험이 산드라를 부른다.

리험: 노니Nonny~! 이건 어떻게 씻는 거야?

          노니Nonny~! 나 이거 먹어도 돼?

          노니Nonny~! 마트는 내가 갔다 올게~!라고


호주는 나이, 부모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는 게 문화이지만 처음 들어보는 호칭에 궁금증이 생겼다.


나: 산드라~ 노니가 뭐야 너 새로운 닉네임이야?

리험이 널 계속 노니라고 부르던데?

 

산드라가 대답한다. 아 그거(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잠시 생각하다 말한다.) 별거 아닌데, 내가 처음

손자가 생겼을 때 그때는 아직 할머니 소리가 듣기 싫은 거야. 그땐 내가 할머니가 되기엔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냥 그렇게 부르라고 했는데 막내 손자까지도 여전히 나를 그렇게 부르네 하하.


첫 손자가 지금 15살이니 15년 전쯤의 산드라는 40대 중반밖에 되지 않은 젊은 여자였을 것이다. 우리가 아기에게 할머니를 쉽게 부를 수 있도록 할미 할미 했던 것처럼 이탈리아어로 논나라고(할머니Nonna) 부르게 한 것이 지금의 노니가 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오늘도 남자 사람 친구와 편하게 수다를 떨고 커피를 만들며 가끔은 한숨을 푹푹 내쉬기도 하는 산드라가 우리 매장에 있다.


짧은 내 영어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연륜 있는 산드라.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나이 같은 건 상관하지도 않고

일, 음식, 여행, 문화, 사랑, 취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이를 말하고 그 나이에 맞춰 산다는 건 얼마나

많은 나를 더 포기하고 그것에 맞추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 이기 보다

그것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오늘도 생각한다. 처음 만나는 누군가의 나이를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늦게 알고 싶다고.

누군가의 이름을 평생 부를 수 있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다.





에필로그

일 년 전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하던 시절 함께 일하던 매니저 산드라의 말과 행동은 늘 내게 새로웠다. 그때그때 느끼는 것들을 써놓았던 메모를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렇게 정리를 해본다. 사람의 인연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


_따뜻한 오후 산드라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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