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였다. 내가 결혼한 지 딱 6개월 되던 때.
시대의 유행에 맞게 우리 부모님은 그때 황혼이혼을 하셨다. 뭐가 문제였을까 라는 생각보다는 잘됐다 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금같이 자유로운 시대에 살면서 생긴 나의 가치관은 누군가에게 엄마와 아빠라는 프레임을 씌워 두는 것보다 제임스와 로렌이라는 이름을 쥐어 주는 게 더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의 결정을 들었을 때 참 잘됐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이 나의 이상이었을까, 드라마와 달리 현실은 우울을 뒤집어쓴 그 자체였다.
당장은 달라질 것들은 없었지만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는 이내 또 우울해졌다.
책을 읽고 티비를 봐도 달라지지 않았다.
점 점 더 나 자신이 없어져 가는 기분이었다.
정작 헤어진건 엄마와 아빠인데, 왜 버림받은 것 같은 건 나인지.
그렇게 몇 주를 우울을 뒤집어쓰고 다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버림받은 아이로 살지, 나 자신을 찾을지.
그렇게 나는 서둘러 호주로 떠나게 되었다.
신혼 6개월 차에.
매일 밤 울며 저주를 퍼붓는 나에게서 우울 귀신을 때어내주고 싶었을 우리 남편은,
너의 꿈을 펼치라며 당장 비행기 티켓팅을 도와주었고 그렇게 말이 나온 지 일주일 만에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패커 하우스 일주일 예약과 그동안의 생활비만 달랑 들고 시드니 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떠나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누구보다 행복할 시기인 신혼 6개월에, 아무리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고 해도 내 곁을 떠난 것도 아닌데 왜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런데 그 상황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니 내 상황에 대해 바라보고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아마 연속되는 새로운 환경과 그 어딘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기분, 그리고 이제 영영 내 꿈 따위는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한 숨을 잔 것 같다.
착륙을 알리는 소리에 비행기 창가를 보니 반짝이는 푸른 시드니의 바닷가가 보였다. 창가 속으로 비치는 햇살이 마치 내게 평생 꿈꿔왔던 너의 꿈을 다 펼쳐보라고 말하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전히 아무것 하나도 달라진 것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울 귀신은 그렇게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는 걸.
유난히 차가웠던 그날, 10월 21일의 시드니 공기와 봄처럼 따스했던 그 햇살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호주에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