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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힐러 소을 Jan 10. 2019

상대의 미묘한 감정까지 한눈에 파악하는 섬세함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미묘한 변화가 쉽게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민감한 기질의 사람은 특별히 주의집중을 하거나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남들은 눈치 채지 못하는 세부사항을 잘 잡아내고 기억한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뛰어난 관찰력, 꼼꼼함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민감성이 강할수록 이렇게 미세한 부분을 인지하고 사소한 변화까지 알아차리는 능력이 뛰어나다. 


아침에 출근했을 때 문득 책상 위의 모습이 어제와 달라진 게 감지된 적이 있다. 뭐가 달라졌는지 알아차리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내 눈은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과 서류파일 틈에서 삐죽이 나와 있는 업무 수첩을 발견했다. 누군가 몰래 내 수첩을 훔쳐보고는 다시 꽂아놓은 것 같았다. 몰래 봤으면 흔적이나 남기지 말 것이지, 왜 그리 허술하게 뒤처리를 하는지...


한때 사무실에 좀도둑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어수선했던 적이 있다. 크게 값이 나가는 물건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직원들의 소지품이 사라지곤 했다. 누구는 출장길에 면세점에서 사온 명품 화장품이, 누구는 책상 위에 두었던 텀블러가, 또 누군가는 지갑 속 현금이 없어졌다고 야단이었다. 보안이 철저한 건물이라 외부인은 출입이 불가능하니 다들 내부 사람의 소행일 거라 짐작했다. 도대체 누가 남의 물건을 몰래 뒤지고 가져갈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누군지 반드시 색출해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때도 나는 좀도둑이 누군지 짐작 가는 사람이 있었다. 소지품이 없어지면 물건 주인은 감정이 격앙되고 절로 목소리가 높아진다. 분명 어디에 두었는데 없어졌다며 이리저리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물건을 찾으러 다닌다. 다른 직원들도 이에 동요하며 웅성거린다. 점심시간이나 티타임에도 온통 도둑질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고 싶어 다들 안달이었다. 


그런 직원들의 눈빛과 표정을 보면 말하는 사람의 감정과 마음 상태를 느낄 수가 있다. 실제로 놀라고 충격을 받아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이 상사나 선배라서 일부러 걱정해주는 척 하는 건지, 속으로는 걱정 되지도 않는데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혹시 도둑으로 오해받을까봐 남들처럼 수선을 떠는 건지, 민감한 나는 한눈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좀도둑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던 것도 평상시 감지한 그 사람의 성향과 물건이 없어지고 난 뒤에 본 그녀의 언행 때문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야무지고 싹싹하다는 평을 들었다. 선배들 마음에 드는 행동이 무엇인지 잘 알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사회생활을 잘 하는 유형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분명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그녀는 질투심이 강하고 영악해서 쉽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말투와 억양에 실린 시기심, 눈빛과 입 꼬리에 맺힌 비아냥이 느껴질 때면 나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런 내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가끔씩 그녀의 행동을 보며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음을 느끼던 중이었다.


어느 날 동료의 택배를 대신 받은 그녀가 주인이 오기 전에 몰래 택배를 열어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용물을 슬쩍 확인하고 티 나지 않게 봉해서 동료 책상에 올려놓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히 자기 볼일을 보는 것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신 선배를 챙기면서 대신 가방을 들어주고 화장실까지 함께 가준 그녀가 인사불성이 된 선배의 가방을 열어보는 것도, 늦게까지 남아 야근하면서 일찍 퇴근한 직원의 책상 주변을 서성이다 서류를 들춰보는 것도, 모두 그 사람의 본질이 투영된 행동이었다. 


내가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녀의 나쁜 손버릇과 영악함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표정관리를 잘하고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을 하고 있어도 그 안에 진정성이 담겨있지 않다면 공허함만 가득할 뿐, 그저 의례적인 말만 늘어놓고 있음을 직감으로 알게 된다. 민감성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자신의 직감이 잘 들어맞는 경험을 종종 했을 것이다. 민감한 사람은 남들도 다 자기처럼 미묘한 걸 잘 파악하고 느낌이 잘 들어맞을 거라고 생각하며 산다. 내가 쉽게 눈치 채고 감으로 아는 것들을 남들도 똑같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가 남들보다 민감하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건 민감성을 타고난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남들 눈에는 포착되지 않는 그녀의 재빠른 손놀림, 없는 말을 지어내며 상황을 모면하는 순간 보이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나는 분명히 감지했다. 그녀의 말에 담긴 감정 상태에서 느껴지는 가식, 그 차가움에 마음이 베일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심증으로 이를 짐작하고 있으려니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생일을 맞은 동료의 남자친구가 사무실로 꽃바구니를 보냈다.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운 터라 내가 대신 받아 동료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무슨 낌새가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문제의 그녀가 부러운 눈으로 꽃바구니를 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눈치 못 챘는지 꽃바구니 안에 있는 카드를 몰래 열어서 읽어 보고는 옆에 놓인 선물 상자를 들춰보고 있었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슬며시 하는 행동이라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한 것 같았다. 


그때 다른 직원이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잠시 커피를 마시러 정수기 쪽으로 걸어가다 우리 팀 쪽을 둘러본 것이었다. 그 직원과 눈이 마주치자 문제의 그녀는 재빨리 하던 행동을 멈추었지만 이번에는 꼬리가 잡혔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꽃바구니 주인이 노발대발하며 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핑계를 대며 잡아떼던 그녀도 자기가 몰래 열어본 뒤 다시 봉투에 넣어두지 못한 카드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고, 결국엔 나쁜 손버릇이 들통 나고 말았다. 


민감한 사람은 이렇게 미묘한 걸 잘 감지하고 작은 디테일까지 한눈에 들어와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민감성이 주는 선천적인 능력이다. 민감하지 않은 이들보다 더 많은 걸 느끼고 알게 되니 그만큼 생각이 많고 깊은 내면세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누가 생각이 더 많은지, 그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를 스스로 깨닫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이 미치고 모두가 놓치는 부분까지도 인식하는 것이 때로는 더 많은 피로감과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이는 위험상황을 빨리 감지해서 나를 잘 보호하게 해주고 세부사항까지 고려하는 높은 준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타고난 민감인의 특성을 깨닫고 이것이 장점이 될 수 있게 잘 활용하는 것이 내 민감성을 살리고 누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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