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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힐러 소을 Jan 17. 2019

너무 성실하고 양심적이라 고민이라면


주말은 직장인들의 코칭 세션 예약이 많아서 바쁘다. 오늘은 새로운 내담자를 만나는 날이다. 내담자는 자신의 사고방식 때문에 직장에서 조롱거리가 되었다며 조직생활이 남들보다 더 힘든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인사를 하면서 들어왔다. 선한 인상에 차분한 말투, 모나지 않은 성격의 그녀를 만났다. 많이 지쳐있는 듯 한 모습에서 그간의 고민과 피로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행사가 많은 곳이에요. 방문객들 올 때마다 선물 구매하고 상사가 출장 갈 때는 기관 홍보용 기념품도 만들어서 챙겨드려야 하구요. 기념품이랑 선물에 예산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몰라요. 많이 사서 쌓아놓고는 상사 바뀌면 또 다른 걸로 다시 만들고. 이게 다 국민 혈세잖아요.......” 


공무원인 그녀는 전시행정과 예산 낭비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보고 계획을 더 구체적으로 세우면, 아니 담당자가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같은 물건도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의향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업무 태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물품 구입 업무가 자신에게 넘어 왔을 때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할애해 비용을 줄이려 애썼다고 한다. 서너 곳에 견적을 의뢰해 가격을 비교하는 그녀를 보고 동료들은 한마디씩 했다. 


“와우, xx씨. 참 대단하네. 업무용 물품 사면서 돈 걱정을 다 해?”

“오, 신기하네. 돈 절약할 생각을 다 하다니. 자기 돈도 아닌데 무슨.”


동료들은 마치 나랏돈 펑펑 쓰는 재미로 일하는 사람들인 양 그녀를 보며 웃어댔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자주 생겼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사고방식이 이상한지, 자기가 공무원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아닌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자신이 성실해서 비웃음을 사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민감성이 높은 사람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분명 민감한 사람이었다. 양심적이고 정직한 민감인의 특성이 업무 처리 방식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 눈에는 필요이상으로 열심이며 고지식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민감하지 않은 동료들이 ‘내 돈도 아닌데 뭐. 어차피 잡혀 있는 예산인데 그냥 쓰면 되지’라고 생각할 때 민감한 그녀는 ‘내 돈이 아니라 나랏돈이니 낭비하지 말고 더 아껴야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민감한 그녀는 공무원 조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시행정과 혈세 낭비를 보면서 양심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전임자가 한 대로, 동료들이 하는 식으로 똑같이 처리하자니 민감한 그녀에게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테다. 사실상 조직 문화에 융화되어야 하고 자율성이 부여되지 않는 업무 체계 안에 있었으므로 그녀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 양심의 가책을 불러 일으켰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가방을 두고 나가서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야근 수당을 챙기는 것, 회사 전화로 사적인 용무의 국제전화를 하는 것, 일이 없는데도 주말에 사무실에 나와서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휴일 근무수당을 받는 것 등 동료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과 당연시 여기는 것들을 그녀는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은 그들처럼 행동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조직생활을 하다 보니 왠지 자신이 튀는 행동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민감한 사람은 남들보다 양심적이라 작은 것이라도 거짓이나 눈속임, 태만함을 용납하지 못한다. 엄밀히 말해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일이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일지라도 자신의 엄격한 도덕적 기준과 양심이 작동하는 것이다. 


민감한 사람의 정직함과 올곧음은 칭송받아야 할 좋은 성품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이를 평가절하하고 민감성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소수이다 보니 세상살이에 부적합한 성격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민감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만의 기준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감한 기질의 사람들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알려주자 그녀는 자신의 민감성을 깨닫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민감인은 정해진 규칙과 규율을 잘 지킨다. 그래서 민감한 그녀는 불필요한 야근과 휴일 근무를 금하라는 공지에 따랐다. 비록 남들은 야근수당을 챙겼지만 말이다. 국제전화요금이 많이 나오자 사유를 파악하려는 총무팀에 태연히 둘러대면서 이후에도 국제전화 쓰는 걸 그만두지 않는 직원을 보면서 반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역시 민감한 기질의 그녀에게는 당연한 반응이다. 동료의 정직하지 못한 모습이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융통성과 처세술로 간주되는 것이 민감인에겐 거짓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지 않을 바엔 차라리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게 마음 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감인의 높은 도덕성은 강한 직업의식과 직업윤리와도 연관이 있다. 민감한 사람은 고유의 성실함과 도덕성으로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업무를 수행하기에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언젠가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누군가가 분명 민감한 당신을 찾을 날이 올 거라고 나는 믿는다.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민감한 당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그제야 깨달으며 당신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물론 민감한 우리는 남들의 평가를 기대하며 의도적으로 성실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진 않을 것이다. 남들이 보든 안 보든 우리는 항상 성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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