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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힐러 소을 Jan 03. 2019

나는 왜 나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 신경 쓰는가


“머리를 얼마나 기르신 거에요? 많이 기네요.”


“일 년 넘게 길렀어요.”


“이렇게 많이 자르면 후회 안 되겠어요?”


“네~~ 괜찮아요. 오랜만에단발로 변신하죠 뭐. 아, 머리카락은 버리지 마시고 저 주세요.”


“네???”


 


나는 미용사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잘린 머리카락을 달라는 손님은 처음인가보다. 머리카락이 왜 필요한지궁금해하는 표정을 보니 이유를 말해줄까 말까 잠시 고민이 된다. 이정도 길이의 머리카락이면 미용실에서모아서 어딘가에 팔거나 염색 연습을 할 때 쓴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머리카락 기부하려고 그 동안 길렀어요. 소아암 환자들한테가발 만들어 주는데 쓰인다고 하네요.”


 


그제야 이해가 된 듯 미용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자르는데 집중한다. 싹둑 거리는 가위질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가운을 입은 내 어깨에도 머리카락의 잔해가 남아 있다. 미리 준비해간비닐봉지에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담아 돌아오는 길에 뭔지 모를 뭉클함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는 그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의료 통역 일을 할 때 만났던 소아암 환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픈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누가 더 아프고 힘든가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참 잔인한 일이지만 나는 유독 소아암병동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힘들었다. 작은 체구의 아이들이 참 많이도 아팠다. 환자의 가족들도 안쓰러웠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흔하고 일상적인 환자들의모습이 몇 달이 지나도 내겐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 임무는 의료진과 환자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것이었지만 내 마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상태가 나빠진 환자를 보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걱정스러웠고어느 날 텅 빈 침대가 보이면 눈물부터 나왔으니 말이다.


 


맡은 일을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태도가실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사실 환자들을 보면서 의료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것이 프로다운 모습이고 자신의 심리적인 안정을 유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국 생활을 할 때 만난한국인들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들이 아픈 아이들 이어서였을까. 병원에서일하는 동안 나는 참 많이 안타깝고 허탈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아이들을 보며 웃어주고 보호자에게친절하게 통역을 해주는 일뿐이었다.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도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퇴근 후에도 항상 마음이 무거웠고 일과 내 개인적인 생활을 분리하기 힘들었다.이렇게 신경이 온통 환자들에게 가 있는 동안 정작 내 마음과 기분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머리카락을기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봉사가 이거구나 싶었던 것도 아마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을 테다.


 


나는 항상 주변 사람들의 일을 많이 걱정하고, 신경 쓰면서 살았다.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도 내가 아는 누군가가힘든 상황에 놓이면 얼마나 마음이 가는지, 남의 문제에 내가 가진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면서 살았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만 신경 쓰다 지쳐갈 때쯤,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민감한 사람들은 마음이따스하고 정이 많아서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주변인들에게 쏟게 되는데, 관심이자신이 아닌 타인에게로 먼저 향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게 된다. 남만 생각하다 정작 자기는 돌보지 못하는것이다.


 


자기중심적이 아니다 보니 주변 환경과 사회적 이슈에 더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할애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민감한 사람들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남들보다 더잘 알아차리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처한 어려움부터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합리성, 나아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이르기까지, 민감한 사람들은 신경 쓰이는일이 참 많다.


 


민감인의 높은 공감능력은 남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데큰 역할을 하지만 자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민감인은 강한 이타심과 이해심을 타고났다. 거기다 타인의 고통에 쉽게 감정이입이 되니 민감인의 마음과 심리 상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사고와 불행에깊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감인은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남을 위해주다가 자기는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무리 이기적이 되려고 해도 잘 안 될 것이다. 나부터 챙기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부자연스럽고 불편할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남을 챙기고 남부터 걱정하며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로 민감한 사람이다. 이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애정만큼이나 민감한 자신도 따스하게 바라보고 보살펴 주기를, 내 우물의 맑은 물을 모두 남들에게 퍼주고 정작 나는 목이 마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민감해서 더 따스한 당신의 마음이 평안한 날이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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