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왁자지껄한 홍대 앞 호프집. 동호회 모임을 끝낸 우리는 함께 모여 뒷풀이 중이였다.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나를 자꾸만 망설이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그날따라 술을 많이 마셔서 아무래도 혼자서 집에 가게 하면 안될 것 같았다.
"내일이 내 절친한 친구 결혼식이야. 지방까지 가야 돼서 오늘은 일찍 가봐야 돼. 내가 부케 받기로 했거든. 그러고 보니 아직 기차표 예약을 안했네. 까먹지 말아야 할텐데."
이렇게 말한 동생이 술이 거하게 취해서 내일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기차표 예약 안해도 되냐고 이미 한번 물어본 터였다.
"응?? 아, 맞다. 해야지."
그러고는 계속해서 웃고 떠들며 노는데 정신 없는 동생이었다.
'저러다가 내일 결혼식 못 가면 어쩌려고 그러지. 부케도 받기로 했다면서. 만약에 늦으면 친구 결혼식에 지장을 줄텐데…'
나는 그 동생의 일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신경이 쓰여서 그 자리를 즐길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갈 생각도 안하고 술 마시며 노는 동생을 보면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아이를 혼자 놔두면 안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대신 기차표를 예매해 놓는게 좋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얘, 정신 좀 차려봐. 술 많이 마셨는데 이제 집에 가야지. 내일 결혼식 가야 한다면서. 표 예매 안해? 내가 대신 해줄까 지금?"
그 때 옆에서 지켜보던 한 친구가 어이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야, 기차표를 왜 너가 대신 챙겨? 정작 갈 사람은 아무 생각 없는데. 누가 보면 친자매인 줄 알겠다야."
순간 나는 당황했다. 거기 모인 많은 사람들 중에 그 동생을 그렇게까지 걱정하고 신경 써주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뒷풀이 모임을 즐기지 못하고 남의 일에 온갖 마음이 다 쓰여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 내 모습이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전히 그 동생 일이 걱정되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찝찝함을 뒤로 한 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번 동호회 모임에서 그 동생을 다시 만났다. 얼굴을 보자 마자 다시 그 때 일이 떠올랐다. 지난 번에 집엔 잘 들어갔는지, 결혼식은 잘 다녀왔는지 궁금했다.
"결혼식이요? 아 그거. 못 갔어요. 그 날 술 먹고 홍대에서 밤새워 노는 바람에. 친구한테 못간다고 전화하고 집에서 잤어요."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도 별 것 아닌 일이었단 말인가. 그럼 부케는 갑자기 누구한테 받아달라고 부탁했을까. 애초에 갈 생각이 없는 결혼식이었던 걸까. 정작 당사자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건만 왜 나는 그리도 신경이 쓰였던 걸까. 어쩌면 저렇게 아무 일도 아닌 듯 넘어가는 상황인게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왜 나를 더 챙겨주지 않았냐고, 나는 기억을 못했지만 너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일을 왜 내게 알려주지 않았냐는 원망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를 겪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이유 모를 미안함에 시달리곤 했다. 내가 좀 더 잘 챙겨줬더라면 상대가 나한테 화를 내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책 한 것이다.
이렇게 남을 도와주고 싶고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는 마음이 강한 것. 이게 바로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 타인의 일과 걱정거리를 떠안게 된다. 타인의 고통과 감정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기억해둘 것이 있다. 민감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더 심리적인 안전거리를 두는 연습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타인의 우울함, 슬픔, 고통스러운 마음을 감지하고 절절히 느낄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내 책임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연민의 정과 이타심으로 상대를 보듬고 감싸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꼭 내가 무언가를 해주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과 삶의 과제까지 내가 책임질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면 질식할 것만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기가 좀 더 수월해 진다.
항상 남의 기분과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이 뭔지부터 살피고 거기에 맞춰 주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는 이러한 자기 패턴을 알아차리고 타인에게로 쏠린 내 시선을 내게로 돌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고 부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질 것이다. 남을 도움으로써 느끼는 행복감이 크고 늘 그렇게 살아온 만큼 시선을 내게로 돌려 나를 먼저 돌보는게 이기적으로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몫의 근심걱정 뿐 아니라 나를 스쳐가는 이들과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의 무게까지 감당하다 보면 결국엔 내가 지쳐 쓰러지는 날이 온다. 나 또한 항상 남에게 맞춰주고 상대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아닌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부터 챙기곤 했다. 그럴수록 심신이 피폐해져 갔지만 그저 익숙한 삶의 방식대로 계속 살아갈 뿐이었다. 나를 위하고 나를 지키는게 어떤 것인지를 애초에 알지 못했던 것이다.
민감인은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고통을 곧 자신의 고통으로 내면화 한다. 그래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짐을 덜어주려 애쓰는 것이다. 내가 건넨 위로와 격려로 상대의 마음이 밝아지는 걸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과 따스함은 민감한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타인에게 친절한 만큼 이제는 나 자신에게 아량을 베풀고 스스로 나를 도와줄 차례다. 자신에게 부드럽고 친절할 것! 지금 내가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을 들여다 볼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남을 위하고 걱정하느라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 것! 잊지 않고 실천에 옮기는데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지만 민감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셀프케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