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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힐러 소을 Feb 14. 2019

거절해도 괜찮다


"신이시여, 제게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한 마음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그 둘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가 쓴 '평온을 비는 기도'의 내용이다. 인간관계에 심한 염증과 회의를 느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던 시기에 내게 찾아온 선물 같은 기도문이다.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하며 이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시절. 그렇게도 내게 독이 되는 관계들을 끊지도 그렇다고 개선하지도 못한 채 숨 막혀 하던 당시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제사 준비로 바쁜 설날 아침이었다. 조용하던 집에 사람이 북적거렸다. 조카들이 장난치며 뛰어다니는 소리에 거실에 켜놓은 텔레비전 소리까지. 그렇지 않아도 정신 없는 명절 아침에 핸드폰이 울렸다.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돕던 중이라 받을 수 없었다. 연휴에 회사에서 연락이 올 일도 없었으므로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끊기는가 싶더니 연달아 서너 번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급한 일로 연락했나 싶어 확인해보니 친구 전화였다. 결혼한 친구라 바쁘게 일하고 있겠거니 했는데 나한테 여러 번 전화를 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 났나 싶어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얼굴엔 이미 수심이 가득했다. 별일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연락이 올 리가 없지 않은가. 





"여보세요?"



"야,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지금 바빠?"



"어… 너 무슨 일 있어?"



"그게. 있잖아~~ 너 오늘 휴일이라 쉬지? 우리 애 영어 에세이 좀 봐달라구. 니가 하면 빨리 하잖아. 우리 애가 몸이 안 좋아서 그러거든. 니 이메일로 보내놨어."



"…… 뭐라고…?"



"한 페이지 밖에 안 돼. 그거 그냥 영어로 옮기기만 하면 돼. 오늘 안에 할 수 있지?"



"……………………………"




순간 나는 머리를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영어로 먹고 사는 직업 탓에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개인적인 부탁이 들어오기 일쑤였다.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아니고 밥 한 끼 사줄 테니 그냥 좀 해달라는 요구가 대부분이었다. 본인이 사적으로 필요한 것부터 자기 친구나 아이들이 필요한 것, 잘 보여야 하는 거래처 직원과 관련된 일까지. 자기애들이 푸는 문제집을 갖고 와서 업무 시간에 그걸 설명해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었고 업무가 그리 바쁘면 점심시간에 봐주면 되지 않냐며 숨통을 조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나중엔 밥을 안 사줘도 좋으니 제발 공과 사를 구분해줬으면 싶어진다. 





이미 여러 번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 게 화근이었다. 기꺼이 도와주고 싶었던 내 마음은 이젠 내 선의가 이용당하는 느낌 때문에 더 이상 이런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당연히 내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단호한 거절의 말을 하지도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었다. 





전화를 끊고 음식 준비를 하면서도 제사를 지내고 조카들과 놀아주고 뒷정리를 하면서도 나는 너무나 속이 상했다. 당연한 걸 쉽게 부탁하는 친구의 모습과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화를 내지도 내 입장을 설명하지도 못하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뒤엉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때가 되니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다 했어? 언제쯤 받을 수 있어?"



"에세이 점수가 중요해서 말이야. 신경 좀 써주라."





명절을 바쁘게 보내고 다들 쉬고 있을 저녁 시간에 친구 딸의 영어 에세이를 대신 써줄 것 인가. 더 이상 이런 식의 부탁은 들어주지 못한다고 내 입장을 정확히 전달할 것 인가. 나는 둘 사이에서 고심했다. 





이 때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평온을 비는 기도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 친구의 태도와 사고방식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임이 분명했다. 바꿀 수 있는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상황에 대처하는 내 태도와 방식을 바꾸면 되는 거였다. 





말보다 글로 내 생각을 더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음을 알기에 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명절이라 하루 종일 바쁘고 정신이 없었어. 이제야 휴식 시간이 생겼는데 너무 피곤해서 쉬어야겠다. 오늘 같은 날은 급하게 연락해도 내가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업무가 많아서 체력이 달리고 휴일에는 나도 쉬어야 하니까 이해해주면 좋겠어. 더 이상 개인적인 부탁은 나한테 무리야." 





내 말에 친구는 크게 화를 냈다. 





"그게 그렇게도 힘든 부탁이었냐? 솔직히 말해서 너한텐 쉬운 거잖아. 해주기 싫어서 안하는 거지. 연휴 동안에 시간 내기가 힘든 것도 아니고. 하긴 애도 없는 니가 내 맘을 알리가 없지."





오랫동안 힘들어서 쩔쩔매며 끌려 다니던 그 관계는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친구가 내 입장을 이해해주고 그로써 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랬지만 결국 그 친구는 내게서 멀어졌다. 이렇게 내가 힘든 입장을 설명하고 항상 남에게 해주던 걸 그만하려고 할 때, 나를 이해해보려 하거나 내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면 늘 나를 찾았지만 정작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땐 내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힘에 부치는 걸 하나씩 거절하기 시작하니 그제야 내 눈에 보이는게 있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삶을 살건 간에 여전히 나와 함께인 친구들이 몇 명 없다는 사실이다. 내 삶에 남아 있으려 하는 친구보다 화를 내고 내게 실망하고 연락이 끊어지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친구를 잃고 나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모든게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었다. 하지만 내게 독이 되는 관계에 끌려 다니며 괴로워하느니 힘들더라도 단호한 거절을 할 수 있어야 내가 산다. 누군가 말했다. 남에게 no라고 말할 때 그건 곧 나에게 yes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우리에겐 거절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게 나를 지키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길이다. 내가 나를 존중하면 남들도 내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직접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평온을 비는 기도는 내 삶의 지침이 되었다. 인간 관계가 버겁고 지칠 때, 내가 처한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 때면 기도문을 떠올린다.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뭐고 바꿀 수 없는 건 뭘까. 함께 생각해보자. 내가 담담히 받아 들여야 할 현실은 무엇이고 내 노력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 놀랍게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 온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알아차리면 삶을 보다 능동적으로 살 수 있게 된다. 꼭 필요한 시기에 내게 선물처럼 나타난 이 기도문은 자기중심을 잡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를 안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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