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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여여 Aug 26. 2021

10화 농한기, 세계여행

세상으로 발을 내딛다.

“I don’t know” , “l don’t understand”
"잘 몰라요", "이해가 안 가요" 낯선 타지에서 이 한마디면 될 걸.


대학 대신 시골살이를 택했지만 시골에서만 살라는 법은 없는 법! 시골에 산다고 늘 여유로운 힐링, 즐거운 식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삼시 세 끼가 반복되는 일상은 늘 단조롭고 평화롭다. 기동력도 없는 고작 스무 살에겐 그 자연 속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놀고 싶고, 꾸미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일상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나에 대한 물음표가 많은 나는 더 큰 세상으로 발을 디뎠다.


세상 공부의 시작은 고등학교 졸업식이다. 일찍이 남해에서 시간을 보내다 2월의 어느 졸업식, 학교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해방감에 기뻐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언젠가 졸업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여행을 떠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늘 나의 버킷리스트엔 세계여행이 적혀 있었고, 처음으로 그것이 실행된 날이다. 잘 모르는 낯선 곳에 나를 데려가는 일은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다. 그 두려움은 나의 무모함으로 그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떠나보는 거야."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긴 호흡을 한번 내쉬고 우물 밖으로 점프를 한 순간이었다. 그 점프는 세상의 문을 연 것과 같다. 여행 짐과 함께 첫 여행의 루트는 약 20일 동안 독일-프랑스-터키 다시 독일 루트. 무언가 나를 그곳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온전히 내가 느낀 시간들. 그 안엔 다양한 기억들이 존재한다. 


터키 이스탄불의 한 사원, 타지에서 낯선 한국어에 놀라 뒤돌아보니 두 소녀가 내게 와 인사를 한다. "안녕?" 너무 반가워 함께 인사를 했다. 한 친구는 케이팝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한다. 넓은 사원을 공연장 삼아 다비치의 노래를 불러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던 그들과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신기했다. 그 노래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너무 쉽게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이스탄불 곳곳을 함께 여행하고 있었고, 많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싱긋 웃는 미소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데 이리도 재밌고 설렌단 말인가. 교과서로 배운 영어를 하나라도 더 써먹지 못해 아쉽기만 했다. 이뿐이던가 내가 만난 대부분의 터키 사람들은 형제의 나라라며 한국인인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줬다. 세상의 따뜻함으로 내 마음이 가득 차던 소중한 기억들이다. 세상은 넓고 사는 방식은 다양했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다른 문화, 그동안 몰랐던 세상을 통해 그동안의 갈증도 조금 해결된다. 그렇다고 모든 여행이  순탄하기만 했을까.


프랑스 지하철. 금발 여인에게 여길 가려면 어느 쪽에서 타야 하냐고 물었다. 한번 묻고 난 그대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결국 주변을 서성이다 다른 사람에게 다시 물었어야 했다. 내가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상하게 나는 알아듣는 척을 하고 있었다.  “I don’t know” , “l don’t understand” 이 한마디면 될 걸.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그리 어려웠을까. 하지만 여행 내내 나는 잘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난 정말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든 잘하고 싶은 나이기에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해보는 것은 엄청난 공부가 되었다. 그 경험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에  틈을 내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시골살이의 삶을 택한 나에게, 여행은 새로운 시각과 감각들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나에 대한 많은 물음표를 풀어주기도 했던 선생님이기도 했고 세상에 대해 알려주는 커다란 책 같기도 했다. 그 길 위에서 사소한 것에 즐거워하는 나를 만나고 내가 모르는 나의 의외의 모습까지도 발견하게 된다. 농한기의 나의 여행은 계속되고 나의 세상은 더 넓어진다.


아무리 많은 정보들을 미리 알아봐도 역시 그냥 내 발길 닿는 데로  여행 공부하는 게 좋다.
내 발이 곧 길이다! 때로는 힘들다 가고 즐겁고 신기하고 이것 모두 다 여행 공부인 것 같다.
많은 일이 그리고 아무 일도:) _ 2017년 02월 15일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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