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nald Mar 27. 2023

라멘 때문에 도쿄에 온 건 아니지만

도쿄 여행기 첫 번째

마지막으로 도쿄에 다녀온 건 2019년 봄이었다. SNS에 올라온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카메구로 풍경을 보다가 어떤 결심 같은 것이 섰고 그렇게 갑자기 5일 후 도쿄행 티켓을 끊었다. 4월의 도쿄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걷기만 해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날씨였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즐거웠다. 그렇게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을 잔뜩 담고, 리스트에 적어둔 곳들을 하나씩 방문하며 봄날의 도쿄를 흠뻑 즐기고 돌아왔다. 그게 어느덧 4년 전의 일이다. 마침 서울에서 시간 부자로 지낼 때라 가능했던 일이다.



GMP - HND

문득 도쿄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작년이었다. 그런데 그사이 다시 호주로 돌아와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보니 이번엔 시간적으로 조금 더 계획적인 플랜이 필요했다. 한국 휴가를 언제 갈까 타이밍을 재고 있던 시기이기도 해서 그 여정에 자연스레 도쿄를 추가하기로 했다. 도쿄와 가보지 못 한 삿포로를 두고 저울질하다가 계획을 세우는 데에 크게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즐겁고 맛있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도쿄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렇게 아직 쌀쌀함이 채 가시지 않은 2월에 도쿄를 다시 방문했다. 오랜만입니다-



숙소는 롯폰기 쪽으로 잡았는데 이전엔 주로 신주쿠나 이케부쿠로 쪽에 머물러서 그런지 위치의 장점을 톡톡히 체감할 수 있었다. 긴자선이 지나는 곳이라 시부야, 긴자, 오모테산도 등의 주요 지역에 20분 정도면 닿을 수 있었고 숙소에서 조금만 걸으면 도쿄 타워가 보이는 곳이었다.


remm Roppongi는 도쿄 타워 뷰 숙소로 유명한 곳이기도 한데 어째서인지 트윈룸에는 선택 옵션이 없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침에 건물 사이로 스카이 트리가 빼꼼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 숙소를 고를 때 설정한 필터는 늘 그렇듯 조식포함과 욕조였는데 일본 답게 작지만 세면대, 욕실, 화장실로 각각 나뉜 구조가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도착했더니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숙소에 러기지를 맡기고 근처 장어집으로 향했다. 언젠가 시드니에서 장어덮밥집을 발견하곤 너무 반가워서 방문했다가 빠른 실망 후 일본 여행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지라 도쿄 첫 끼가 장어인 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지막 오차즈케까지 야무지게 말아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타베로그를 보고 간 곳이었는데 런치 메뉴라 그런가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드는 곳이었고 트친님이 알려주신 장어집을 갈걸 하고 조금 후회를 해버렸다.



냅다 깃발을 꽂아놓은 밥집과 카페가 있었을 뿐 별다른 계획은 없었던지라 일단 오모테산도로 향했고 도착하니 근처에 키츠네 카페가 있길래 (그다지 한 건 없지만..) 지친 몸을 좀 쉬고 당분 충전 타임을 갖기로 했다.



폭닥폭닥한 케이크와 아이스 라떼를 한껏 흡입했으니 이제는 오모테산도 힐즈로. 한국에선 청담동쪽은 잘 갈 일이 없다 보니 오랜만에 고급진 오모테산도 숍들을 보며 조금 감탄해 버린 호주 시골쥐. 번쩍번쩍 시원하게 건물째로 들어선 명품 플래그십 스토어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굉장하구먼..'하고 감탄을 해버렸다. 긴자랑은 다르게 오모테산도는 타겟층이 젊다 보니 거리가 주는 느낌이 좀 더 트렌디하고 세련됐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매장은 얼마 전에 화제가 되었던 쿠사마 야요이와 손을 잡은 루이뷔통 오모테산도 점. SNS을 통해 본 파리 매장도 굉장했는데 이쪽도 결코 뒤지지 않았네요.



한국에서 북촌-인사동-청계천-명동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좋아하는데 도쿄에 오면 하라주쿠-오모테산도-시부야 코스를 그렇게 걷는다. 오모테산도에서 몇몇 숍에 들른 후에 시부야까지 쭉쭉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네, 역시 스크램블 교차로가 있겠죠. 옛날 옛적에는 하치공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곤 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레 시부야 스타벅스 2층에 올라가서 보행자 신호가 녹색등으로 바뀔 때 스크램블 교차로를 아이폰 동영상으로 담는다. 이미 너무 유명해져서 도쿄 다녀왔다고 하면 서양인 친구들도 스크램블 스퀘어를 보고 왔냐고 물을 정도로 랜드마크이기도 하고 마침 퇴근 시간이라 빠르고 혹은 느리게 제 갈 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광객의 시점으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첫날이기도 하고 스크램블 교차로를 봤으니 오늘 할 일을 다 했다(?) 싶어 조금 일찍 롯폰기로 돌아왔다. 사실 롯폰기에 봐둔 라멘집이 있었기 때문인데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곳이라 조금 이른 시간에 찾았음에도 웨이팅 줄이 무척 길었다.


처음 맛을 들인 라멘이 하카타 지역의 돈코츠 라멘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돈코츠 파지만 여행 가면 동선에 걸리는 유명한 라멘집을 종류 가리지 않고 찾아가는 편이다. 이 날 찾아간 롯폰기의 이루카는 쇼유 베이스의 라멘집이었는데 여러 토핑과 함께 트러플 고명을 올라준다는 게 특이점이었다. 메뉴를 보다가 라멘 하나만 먹고 오기가 아쉬워 미소 치킨라이스도 추가했다. 평소라면 안전한 차슈덮밥을 택했을 테지만 여행자 모드가 되면 갑자기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니까. 그래서 이럴 때는 스펙트럼을 한껏 넓히는 전략을 택한다. 그러다가 또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는 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루카 라멘은 이번 도쿄 여행 최고의 선택으로 꼽을 정도로 탁월한 맛을 자랑했다. 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완자, 계란 총 다섯 가지 토핑이 올라가서 이것저것 골라먹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면과 국물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원래 면 귀신이기도 하지만 적절하게 간이 된 육수를 머금은 면을 후루룩 한 입 먹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역시 도쿄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라멘 먹으러 도쿄에 온 건 아니지만 순식간에 여행자를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맛있는 라멘 한 그릇이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되어 라멘집을 나왔더니 숙소가 코앞이었다. 정말 롯폰기는 여러모로 옳은 동네군요.






도쿄 여행기 두 번째,


작가의 이전글 어떤 감정은 한 발짝 뒤늦게 찾아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