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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May 15. 2023

매일 서점에 가는 여행자

도쿄 여행기 네 번째

여행 갈 때면 항상 이번엔 어떤 책을 가져갈까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작가의 신간 소식이 들려오면 동반책으로 선정될 확률이 높아지지만 '이 책이 좋을까 아니면 저 책을 나으려나' 이렇게 책을 고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러기지 안의 공간도, 책을 읽을 시간도 제한적이니 너무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책을 가져가는 게 포인트다. 그렇게 인터넷 서점 사이트와 책장을 둘러보며 이번 여행에 함께할 책들을 골랐다. 좋아하는 작가의 시리즈 신간 한 권과 이미 여러 차례 읽었지만 이번 도쿄 여행과 더없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두 권이 더해졌다.


이번 도쿄 여행에는 하라다 히카의 『낮술 2』, 유어 마인드 이로님의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 뀰님의 『도쿄규림일기』, 이렇게 총 3권을 가져갔다. 하라다 히카의 소설을 제외하면 모두 이미 완독 한 책이었는데 도쿄 여행 중간중간 읽기에 부담이 없고 목적지를 선정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고른 책이었다. 숙소에서 츠타야 롯폰기 점이 멀지 않았고 그래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푼 뒤에 다시 책을 들고 심야의 책방을 찾았다.



츠타야 롯폰기 점

일본에는 크고 작은 츠타야 서점이 이곳저곳에 많았고 스타벅스와 연계해 북카페의 성격을 띠는 지점도 많았다. 츠타야의 영업시간은 꽤 늦은 시간까지(롯폰기 점은 오후 11시까지 영업했다.) 이어져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쉬는 듯 가벼운 마음으로 서점에 들르는 즐거움이 있었다. 롯폰기 츠타야 점은 1, 2층으로 이루어진 작지 않은 규모를 자랑했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로 늦은 시간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매대에 진열된 슬램덩크 일러스트집을 구경하다가 음료 한 잔을 사들고 창가 쪽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마무리는 따뜻한 라떼.


평소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여행지에서 하는 독서가 즐거운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몰겠다. 하지만 여행이란 기본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한정적이고 그 소중한 시간을 최대한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이리저리 일정을 끼워 넣다 보면 결국 빡빡한 일정들로 스케줄표를 가득 채우게 된다. 일부러 책 읽을 시간 같은 것을 미리 빼놓지 않으면 어떤 때는 들고 간 책을 그대로 들고 오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독서가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여유롭게 독서를 할 정도라면 그건 한달살이처럼 주어진 시간이 길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아예 여행의 목적이 쉼 자체인 휴양지라는 걸 뜻하니까.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독서를 할 정도로 여유 있는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라다 히카의 『낮술 2』는 소설이지만 책에 등장하는 음식점은 실제로 일본에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여차하면 여러 힌트들을 조합하여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 가게를 방문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품기도 했고 이 작가가 음식 이야기에 무척 진심인 것을 알기에 #나홀로_도쿄_여행과 #음식이란 키워드와 더 어울리는 책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주문한 라떼를 한 모금씩 마시며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는데 그날은 운명 같은 한 문장을 만나기도 했다. "언제든지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든지,라는 건 없어요."라는 문장. 다음 도쿄행은 또 언제가 될까. 적어도 3년 후가 아닐까? 그렇다면 조금 더 열심히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맛봐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지점까지 생각이 닿았다. 그리하여 소설 속 한 문장에 크게 감명받은 도쿄 여행객은 3박 4일 여행 동안 매일 늦은 밤 야식으로 라멘집을 찾았다는 후문. 여러분, 여행지에서의 독서가 이렇게나 유용합니다.



츠타야 티사이트 @ 다이칸야마

심야의 롯폰기 츠타야 서점이 좋았어서, 마지막 날에는 다이칸야마에 있는 티사이트를 오랜만에 찾았다. 총 세 개로 나눠진 건물을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천천히 구경을 하다가 하나도 안 바빠 보이는 고양이가 그려진 바쁘다바빠 엽서를 구매하고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음료는 사쿠라 프라푸치노. 모처럼 일본에 왔으니 계절 한정 음료를 맛보기로 한다. 아이스 음료라 받자마자 컵홀더를 씌웠는데 알고 보니 스태프 언니가 거기에 귀여운 그림을 그려줬단 걸 컵을 버리면서 깨달았다. 언니, 미안해.


지난번 도쿄 여행에서 소망했던 다이칸야마 츠타야에서 반나절 책 읽고 오기는 이번에도 무참히 실패했다. 이쯤 되면 나는 그저 책 읽은 기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낯선 츠타야 서점의 풍경도 눈에 담아야 하고 처음 맛보는 사쿠라 프라푸치노도 부지런히 맛봐야 하고 중간중간 핸드폰도 확인해야 했다고 에두른 변명을 해본다. 그래도 다음번 도쿄 여행에도 어김없이 츠타야 서점을 또다시 찾을 거란 예감이 드는 걸 보니 비록 시간에 쫓겼지만 좋은 시간을 보낸 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번에는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올지 그리고 어떤 책을 가져올지 미지수지만 아무쪼록 넉넉한 일정과 함께 하는 여정이라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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