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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30. 2021

그래서 아이 낳으면 좋은 건 뭔가요?

아이 먼저 낳은 언니들이 하도 '애 낳으면 끝'이라고 말씀하시길래

결혼 전, 직장에서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된 막내 그룹에 속해 이쁨을 받던 시절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직장 동료들이랑 같이 말이다. 돈 없던 학생 시절에 비해 예쁜 옷도 사입을 수 있고 맛있지만 조금은 비싼 식당도 다니는 재미에 빠져 신나는 시기였다. 돈도 조금씩 벌면서 집도 독립해서 살았기에 내 시간도 자유롭게 쓰니 아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20대였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다들 28살에 많이 결혼하던 분위기였다.(우리는 그때 모두 고정관념의 노예들, 아홉수를 피해라! 첫 애는 서른 전에!) 그래서 20대 후반이던 우리들 하나씩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그랬더니 직장의 언니들이 결혼은 매우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꼭 이 이야기를 덧 붙였다. 애 낳으면 돌이킬 수 없으니 그전에 미리 신혼을 마음껏 즐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애 낳으면 끝이다."

"너희의 시간은 없다."

"니몸도 니몸이 아니다."

"우유공장이 된다."

"밤에 잠도 편히 못 잔다."

"영화나 외식도 당분간 끝이다."

"옷도 마음대로 못 입는다."

 등등...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언니들은 다들 결혼도 하고 애가 있었다.

 





"그러면 도대체 애 낳으면 좋은 건 뭔가요?"


"아, 그건 애를 낳았다는 거야."




아니 이게 무슨 말인지, 방구인지. 애 낳으면 안 좋은 점은 끝없이 나열하더니 애 낳으면 좋은 점은 애를 낳았다는 거라고? 나의 궁금증은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지만, 나도 애엄마가 되었다.








애를 낳아보니 정말 언니들 말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예쁘고 자유롭던 아가씨의 삶은 아이의 탄생과 함께 그대로 쫑이 났다. 아이는 24시간 누군가가 꼭 옆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잠시라도 애를 봐줄 사람이 없으면 절대 약속도 외출도 쉽지 않았다. 어쩌다 아이 잘 때 혼자 몰래 쓰레기 버리러 쓰레기 수거장 나가는 5분이 그렇게 신이 났다. 마치 엄청난 미션을 해내는 기분으로 가슴은 콩닥거렸다.



내 몸은 내 몸이 아니게 되어 집에 붙박이 가구처럼 소파에 앉아 정기적으로 우유를 생산하는 우유 공장이 되었다. 또 왜 그렇게 잠은 안 자겠다고 울어대는지, 밤이 오는 게 두려운 날도 많았다. 또 겨우 재워도 자다 깬 아이가 밥을 달라고 울면 눈도 못 뜬 채로 심야의 우유공장은 가동되었다. 거기다 가끔씩 우유공장에서 우유 생산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오버해서 생산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가슴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났다.



내가 가장 슬펐던 것 중 하나는 가을인데 니트를 입을 수 없다는 거였다. 원래 니트를 매우 좋아하는데 아이를 아기띠에 안아야 하니 입을 수가 없었다. 원래 예쁜 유모차에 아이를 넣어 할랑할랑 한 손으로 끌며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할리우드 스타처럼 공원 산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큰 맘들여 최신 유행 거대한 유모차도 샀었다. 하지만 아이는 유모차에 별로 앉아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모차는 집에 모셔두고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나갔다. 그랬기에 옷도 내 마음대로 입을 수가 없었다. 특히 아토피를 가진 아이의 엄마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언니들 말은 틀린  하나 없었다.  모든 어려움이 그냥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견뎌졌다. 힘들게 우유공장 가동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대로 잠이  아이보면 너무 행복했다.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특했고, 나를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뭉클했다.  모든 행동과 표정이 예뻐서  보기엔  다르지만  보기엔  똑같은 사진과 동영상을 하루에 100장씩 찍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행히 아이는 하루하루 자랐다. 100, 200, 300 감사하게도 점점 육아의 강도는 조금씩 낮아졌고, 아이와 같이 생활하면 할수록 나의 입에선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너를 낳은 거야."




왜? 냐고 물으신다면 한 번에 바로 답하기는 어렵다. 저 문장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수많은 진한 진심이 담겨 가슴 깊은 곳에서 저절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로소 온전히 언니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애를 낳아서 좋은 점은 바로 애를 낳았다는 것, That's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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