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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11. 2020

나는 어떤 아빠일까?

밥상머리에서 배운 인생

오후 5시 업무가 끝났다. 시청에서 버스 한 번이면 집까지 갈 수 있다. 평일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8시쯤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8시를 퇴근시간으로 안다. 집에 들어가기 전 1시간 의 여유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시간이다. 두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잠깐 고민했다. 버스에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면 집으로 가는 길. 버스에 내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카페로 가는 길. 잠깐 망설이다 횡단보도를 건넜다.


집에 도착하니 6시 반이었다. 아이들과 아내가 놀라며 반겼다. 나도 그 시간에 집에 들어간 게 오랜만이었다. 식탁엔 스파게티 면 1봉과 두 가지 맛의 소스가 있었다. 아이들이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고 했단다. 아내에게 이보다 좋을 순 없는 저녁이었다. 준비는 내 몫이다. 손을 씻고 재료 손질을 한다.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더해 소스를 만든다. 아이들은 맵지 않은 아라비아따 크림소스 스파게티. 아내는 매운맛이 나는 로제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소스와 면을 두 번 만들어야 한다. 어렵지 않다. 우선 아이들이 먹을 것부터 만든다. 소스를 만들고 면을 삶는다. 두 아이는 만족스러운지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얼굴에 묻혀가며 맛스럽게 먹었다. 먹는 모습에서 뿌듯함이 전해온다. 다음은 아내가 먹을 약간 매운 스파게티다. 순서는 처음과 똑같다.  멋스럽지 재료가 고급스럽지도 않은 평범한 모양의  누구나 알만한 맛이다. 다만 옆 사람이 해줬다는 게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설거지까지 마치니 8시였다. 남은 시간 책도 보고 뉴스도 봤다. 각자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큰 딸과 뉴스에 나오는 BTS 보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언니가 잠든 뒤 잠이 안 오는 작은 딸이 뒤척인다. 옆에 누워 몇 마디 나눈 뒤 다시 나왔다. 잠시 뒤 잠이 들었는지 방안이 조용하다. 오랜만에 여유 있는 저녁 시간이었다.

나만 그랬을까? 저녁을 준비하는 게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라 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은 아버지가 아버지의 역할을 잘한다고 느낄수록 이들의 자아존중감이 높게 나타났다. 그리고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이 아버지가 제 역할을 얼마나 잘하는 가에 따라 자아존중감에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청소년기 자녀들이 아버지의 양육행동이 애정적이고 합리적이며 자율적이라고 여길수록 아버지의 양육행동은 자녀의 자아존중감 발달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좋은 아버지로 산다는 것》- 김성은


아버지로서 해야 하는 역할은 다양하다. 어쩌다 하루 저녁을 차려줬다고 좋은 아버지라고 할 수 없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건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아이들도 인지하게 된다고 한다.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관심의 표현도 지속적으로 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이와 거리를 좁히고 대화가 될 수 있는 아버지를 바란다면 어쩌다 한 번 차리는 저녁상이  아니라 평소에 관심을 보이고 표현을 하는 게 더 필요할 것이다. 관심과 표현을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하기보다 가용한 시간과 상황을 활용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가령 퇴근이 늦을 경우 영상 통화를 이용해 짧게라도 통화하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평소 다정하지 못한 탓에 애정표현이나 깊은 대화를 시도해보지 못했다. 어쩌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주제가 있으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내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지면 아이는 지루해하는 것 같았다. 아이 수준에 맞게 설명을 못하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마 못가 대화가 끊긴다. 물론 둘 사이에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 그럴 수도 있다. 좀 더 생각이 자라면 지금과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가서 대화를 시도하기보다 지금부터 라도 조금씩 대화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꼭 필요할 것 같다.  서로에게 만족할 수 없더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준다면 거리를 좁히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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