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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31. 2021

행복한 밥상은 서로 닮아 있다

밥상머리에서 배우는 인생

"엄마랑 마트 다녀올 건데 먹고 싶어 거 있니?"

"젤리!"

"그거 빼고."

"뽀로로 딸기맛."

"그것도 빼고. 요즘 단걸 너무 먹었어."

"그럼 팬케익 해 주세요."

"오랜만에 한 번 만들어 볼까."

"휘핑크림도요~"

마트에서 파는 팬케익 한 봉지에  달걀 하나 넣고 가루가 뭉치지 않게 오래 저어주면 준비 끝이다. 다음은 토핑을 준비한다. 초벌 바름을 위해 메이플 시럽이나 초코 시럽을 준비해준다. 그 위에 얹을 딸기, 바나나를 슬라이스로 접시에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휘핑크림으로 정점을 찍을 수 있도록 꺼내놓는다.


팬케익은 굽는 팬의 온도가 중요하다. 약 불보다 더 약한 불에서 지긋이 구워야  속 까지 골고루 익는다. 이때 기름은 키친 타월에 묻혀 팬을 한 번 닦아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데워진 팬에 작은 국자 하나 분량의 반죽을 약 10cm 높이에서 자유낙하시켜준다. 그러면 반죽의 점성에 의해 자연스레 퍼지게 된다. 가운데 살짝 솟은 부분은 국자 뒷면으로 국자 무게만큼의 힘으로 한 방향으로 돌리며 펴주면 된다. 속 까지 골고루 익으려면 두께가 균일해야 한다. 반죽이 한쪽에 뭉치지 않게 두 어번 더 돌리며 펴주면 된다. 크기는 식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앞접시 크기면 적당하다.

팬에 열기를 먹기 시작한 반죽은 공기주머니 같은 모양이 균일하게 피어나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익기 전 공기주머니는 부드럽게 피어나다가 속이 익어가면서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공기구멍이 굳은 것처럼 보이면 아래 면이 거의 다 익은 거다, 이제 뒤집어 줄 타이밍이다. 팬케익은 금방 익기 때문에 뒤집어 준 뒤 열을 세어 주고 팬에서 꺼내 주면 된다. 이 같은 방법으로 한 국자 양으로 하나씩 만들어 주면 된다. 빨리 굽기 위해 28cm 프라이팬에 두 개씩 구워 봤는데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유는 프라이팬에 전해지는 열이 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팬도 둥글고, 가스레인지 불도 둥글어 열기가 덜 전해지는 곳이 있다. 그 부분 때문에 한 장의 팬케익에도 굽기 정도가 다른 결과물이 되었다. 시간이 걸려도 한 팬에 한 장정성껏 구워주는 게 아이들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노릇하게 구워진 팬케익 위에 시럽, 과일, 휘핑크림으로 취향껏 올려 먹으면 된다. 아이들이 신나게 데코레이션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차라리 젤리를 사주는 게 낫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도 한 껏 상기된 얼굴로 신나게 만드는 걸 보면 나도 흐뭇해진다.

몇 번 만들어 본 아이들은 새로운 데코레이션을 개발해 낸다. 첫 장 위에 시럽을 잔뜩 두르고 바나나를 얹는다. 그 위에 팬케익 한 장을 얹는다. 두 번째 장 위에 초코시럽이 두껍게 칠해진다. 초코 시럽 위엔 딸기가 얹어진다. 보고만 있어도 뱃 살이 붙는 것 같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대미를 장식할 한 장이 더 얹어진다. 빠지면 섭섭한 휘핑크림이 노릇한 팬케익이 안 보일 정도로 덧 칠해진다. 며칠은 단 게 생각 안 날 것 같다. 의기양양하게 완성된 작품을 자랑한다. 드디어 시식이다. 내심 첫 조각은 내 입으로 올 거라 기대해본다.

"아빠 어때?"

"진짜 맛있어 보인다." ('한 입 만' 하는 표정을 담아서)

손에 들린 포크와 나이프로 한 조각 썬다. 이제 내 입을 포크 앞으로 가져가면 된다.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의 입으로 순식간에 들어가 버린다. 애써 침착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서운함을 누룰 수는 없었다.

중학생 때로 기억된다. 별일 없이 잔잔하게 보내고 있는 우리와 달리 아버지는 분주해 보였다. 우리에게 특별한 점심을 만들어주겠다며 좁은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주 재료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쩌다 특별한 일이 있어야만 먹을 수 있는 고기였다. 그것도 선홍빛 사이로 하얀 실금이 나 있는 소고기였다. 대신 얇게 저며져 두뚬하게 말려있었다. 고기 옆에는 양파, 양배추, 파, 당근, 표고버섯이 한 입에 넣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크기로 손질되어 있었다. 손질된 재료와 소고기는 넓고 납작한 전골냄비에 가지런히 담겼다. 간장을 주재료로 만든 국물이 가지런히 놓인 재료들을 감싸 안았다. 그 위에 당면 한 움큼이 얹어졌다. 끊는 동안 우러나오는 맛을 잡아두기 위해 뚜껑이 닫혔다. 냄비 안 재료들이 가진 고유한 맛이 우러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코로 전해지는 향이 음식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끊는 동안 우러나온 음식 향이 온 방을 채울 즘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밥상을 앞에 두고 안절부절못하게 있었다. 불을 끄기 전 노란색만 보일 정도로 잘 저어준 달걀물로 재료 위를 덮어주었다. 그렇게 한 냄비 끊여진 소불고기 전골이 밥상 한가운데 올려졌다.

어른이 된 지금도 전골요리는 국물을 먼저 맛보게 된다. 한 숟가락 뜬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조심스레 입으로 넣는다. 양파와 양배추에서 우러나온 단맛과 간장의 짭조름한 맛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다. 국물에 말아먹어도 한 그릇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채 반 고기 반의 비율로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는다. 양배추의 아삭한 식감이 남아 있어 씹는 맛이 있었고 반대로 푹 익은 고기는 씹는 수고 없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다섯 식구가 둥근 밥상에 둘어 앉아한 냄비를 다 먹었던 것 같다. 아들 셋이라 나름 넉넉하게 준비했지만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낸 냄비를 보며 아버지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먹은 소불고기는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를 위해 좁은 주방에서 온갖 좋은 재료를 정성스레 준비하며 한 껏 맛을 낸 음식을 준비해주던 그 모습, 그 기다림이 곧 행복이었던 것 같다.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 더 많기는 하지만 뜨문뜨문 이런 행복한 기억이 있음이 감사할 때가 있다. 누군가 그랬다 나이들 수록 추억의 힘으로 살게 된다고. 안 좋은 기억을 희석시켜 주는 건 간간이 자리하고 있는 이런 행복했던 기억이 된다는 거다. 내 아이에게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음식을 만들어준다. 팬케익을 굽고, 각종 재료를 얹어 먹는 그 순간의 즐거움. 이렇게 쌓인 소소한 추억이 훗날 아이들에게 행복한 밥상으로 기억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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