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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01. 2021

여보! 오늘 점심은 내가준비할게.

밥상머리에서 배우는 인생

현관문을 열면 두 아이가 뛰어나와 나를 반긴다. 큰 아이의 눈을 보고 인사를 한 뒤 작은 아이를 들어 안아 반가운 마음을 전한다. 옷을 갈아 입고 씻으러 들어가면 그때부터 장모님과 아내는 새로 끊인 국과 냉장고 반찬을 꺼내 상위에 올려놓는다. 씻고 나오면 갓 지은 밥 한 그릇을 담아내면서 식사 준비를 마친다. 네모난 식탁의 한쪽 면씩을 차지하고 식사를 시작한다. 상에 앉아도 서로의 눈빛을 외면하고 있었다. 벌써 삼일 째 대화 없는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분위기를 짐작한 장모님도 별다른 말 없이 식사를 이어간다. 간간이 해맑은 아이의 장난이 이어지지만 그마저도 받아줄 여유가 없다. 그저 씩 한 번 웃어주는 게 전부다. 밥을 먹고 있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둘 사이의 냉랭한 기운을 들키지 않으려 장모님과 대화를 이어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나 때문에 더 불편해하는 눈치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상을 정리한 뒤 TV 앞에 모여 앉는다. 오히려 이 시간이 더 편하다. 말없이 TV에만 집중하면 그만이다. 드라마에서 뉴스로, 뉴스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내내 시선은 같은 곳을 향해 있다. 그럴수록 침묵의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십여 년 동안 손에 꼽을 만큼 싸웠다. 결혼 후 1년 뒤부터 8년 동안 장모님이 아이를 봐주며 함께 살았었다. 그래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안 된 걸 수도 있다. 또 우리 둘은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라 평소에도 대화 시간이 짧은 편이다. 대부분의 싸움은 별 일 아닌 걸로 시작하지만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길어졌던 것 같다. 나부터도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입을 닫는다. 먼저 말을 걸어오기까지 기다리는 나쁜 습성을 갖고 있었다. 아내도 한두 번은 양보하며 먼저 말을 걸어왔지만 정도가 심한 경우는 끝까지 침묵을 이어갔다. 그럴 때면 내가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팽팽하게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뒤늦게 대화를 해보면 왜 싸웠는지 보다 입을 닫고 있는 모습에 더 화가 났다고 한다. 조금만 양보를 했다면 일주일 동안 어색한 침묵을 이어갈 이유가 없었던 거다. 그것도 장모님까지 불편하게 만들면서 까지.


8년 동안 두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 준 장모님은 이제 당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도 이제 손이 덜 갈 때라 몸 편히 함께 있길 바랐지만 기어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장모님이 내려가신 뒤 온전히 네 식구의 생활이 시작됐다. 그때부터 사십춘기가 시작됐던 것 같다. 불안한 직장, 은퇴 후 고민, 월급만으로 감당이 안 되는 생활은 하루를 살 수록 점점 어두운 터널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런 고민 때문에 행동에도 날이 서 있었다. 아마 그때가 예민함의 정점을 찍고 있었던 것 같다. 집에 와도 대화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밥상을 차릴 때도 대충 거들고, 설거지는 언제나 아내의 몫이었고, TV 앞에 죽치고 있다가 시간에 상관 업이 볼 만한 게 없어지면 그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무기력한 나를 매일 보고 있는 아내도 힘든 시간이었을 거다.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었을 거다. 무엇을 믿고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어느 것 하나 선명한 게 없이 말이다.

어느 날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자기 계발을 위해 여기저기 좇아 다녔다. 책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고 사람들을 만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씩 선명하게 그려가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주말도 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든 게 나와 가족을 위한 거라 믿고 하루하루 버텨냈다. 아내에게 어떤 설명도 하지 않은 체 나만 신났었다. 친절하지 못했었다. 

10개월을 두고 보던 아내가 터지고 말았다. 터지는 아내를 보고 나도 폭발하고 말았다. 엉성하게 쌓아 올린 탑 중간에 돌 하나를 빼면 무너지는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나는 나의 모든 노력이 가족을 위한 거라고 합리화했다. 아내는 가족을 위한 다는 게 전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가족을 위한다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설명해 보라고 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혼자만 좋은 게 과연 가족을 위한 행동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거기에 맞선 나는 지금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나름 열심히 살려고 노력 중이라는 어정쩡한 설명밖에 못했다.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무언가 잘못 가고 있다고 느꼈다. 아내도 이해시키지 못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일 수 있을까 싶었다. 내가 당당하게 드러내야 지켜보는 아내가 덜 불안하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불만과 불안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이어진 격렬한 감정의 대치는 최악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대화를 포기하면 갈라설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갔다. 

늦은 밤 식탁에 마주하고 앉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이 놓여있었다. 감정은 눌러두고 대화를 시작했다. 강바닥에 가자 앉은 진흙을 걷어내야 물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처럼 그동안 쌓아두었던 모든 걸 꺼내놓기로 작정했다. 이렇게까지 대화를 했는데도 해답이 없다면 그땐 어떤 선택도 홀가분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그 밤 그 자리를 시작으로 몇 주 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늦은 밤 동네 주점에서 막걸리에 파전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장을 보기 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때 나눈 대화 시간은 10년 넘게 살면서 이어온 대화의 양을 훌쩍 넘겼던 것 같다. 길고 깊이 대화를 나눈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더불어 서로를 더 깊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마흔을 넘겨 은퇴를 걱정하는 건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가족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두 달 고민으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다. 새로운 걸 시작하겠다는 결정도 쉽지 않고, 그 과정을 두고 보는 것 또한 불편하다. 하지만 언젠간 부딪혀야 할 문제다. 이때 가족은 짐이 아닌 힘이 된다. 특히 아내나 남편의 지지는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하다. 가족의 이해와 지지는 불확실을 버텨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인 거다. 가족의 지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내가 해야 하는 게 명확해졌다. 가족을 믿고 내 선택을 믿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해 내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하루하루의 믿음이 쌓이면 가족은 더 견고해질 수 있을 거다. 지금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이런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가족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하나 있다면 정성껏 준비하는 밥상이다. 국을 끓일 때도, 고기을 구워 줄 때도, 달걀말이를 해 줄 때도, 라면 한 그릇을 끓여줄 때도 정성을 다하려고 한다. 함께 먹는 한 끼를 위한 정성이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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