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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05. 2021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

밥상머리에서 배운 인생

6시,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이른 시간이라 도로는 한가하다. 자유로를 올라타면 속도를 맘껏 낼 수 있을 만큼 차량 흐름이 좋다. 막힘없이 달리다 보면 30분도 안 걸려 현장사무실에 도착한다. 밤새 차가워진 사무실 냉기가 얼굴에 닿는다. 전등을 켜고, 난방기를 돌리고, 컴퓨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냉기도 조금씩 엹어진다. 전날 계획했던 작업 내용에 맞게 근로자와 장비가 준비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6시 50분 약속된 장소에 모인다. 밤새 굳은 몸을 풀어주기 위해 체조를 한다. 체조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작업할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작업 간 주의해야 할 안전 사항도 전달한다. 학교 다닐 때 매일 수업 전 의식처럼 진행되던 조회시간과 같은 것이다. 7시가 조금 넘으면 각자 맡은 작업 구역에서 주어진 일을 시작하게 된다. 작업이 시작되면 현장을 돌면서 놓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한다. 작업 내용을 상의하기도 하고, 작업 구역을 다시 정해 주기도 한다. 추가로 투입될 자재를 받아 작업자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그날 일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빠짐없이 챙겨 놓으면 8시가 넘는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다. 짧지만 집중도가 높은 시간이라 에너지를 많이 빨린다. 빨린 에너지를 채워져야 다음 일과를 소화할 수 있다. 비로소 아침을 먹으러 간다.


학생 때부터 사회생활을 이어온 최근까지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고 믿었다. 등교를 위해 6시에 집을 나서야 할 때도 어머니는 어김없이 아침밥을 차려 주셨다. 군대에서도 7시면 아침을 먹여 줬다. 현장 근무를 할 때는 회사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게 해 줬다. 회사에서 지원이 안 될 때는 내 돈을 내서라도 꼭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어야 뇌에 영양이 공급되고 비로소 몸이 깨어난다고 믿었다. 내 몸도 그렇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마흔이 넘어서 까지도 절대 변해서는 안 되는 진리로 믿고 있었다.

8시면 식당 문을 열기엔 한참 이른 시간이다. 먹고 싶은 메뉴보다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24시간 열려 있는 맥도널드의 맥모닝, 김밥천국의 김밥, 편의점의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 정도가 이른 아침에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다. 잘 차려 먹기보다 먹을 수 있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아침밥을 해주는 식당이 있으면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 갓 지은 밥에 대 여섯 가지 반찬과 뜨끈한 국으로 속을 채울 수 있다. 간혹 전날 과음으로로 해장이 필요하면 즉석에서 끓여주는 해장 라면은 속풀이로 제격이다. 십 수년을 이렇게 아침을 먹어왔다. 메뉴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먹어야만 하루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었고, 에너지가 난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당연하게 믿었던 것들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식사를 거른 지 5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시작은 작년 말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부터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내 몸의 건강 수치가 정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식단 관리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몸의 어느 한 곳이 심각하게 나빠진 적도 없었다.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먹고 틈틈이 야식도 먹으며 입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먹어왔다. 아픈 곳이 없어서 더 안일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몸속 여기저기 수치들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였다. 더는 외면할 수 없었고 식단관리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고민 끝에 선택한 방법이 '간헐적 단식'이었다. 16시간 공복 후 8시간 동안 하루치 식사를 하는 방식이다. 단식하는 16시간 중 아침 식사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전날 8시 이전에 식사를 마치고 다음 날 12시까지 단식, 자연히 아침 식사를 하면 안 되었다. 단식을 시작한 초기엔 손 발이 떨리기도 했고 공복감을 견디기 힘들 땐 이렇게까지 참아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침을 거르는 목적이 명확했기에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다. 아침을 꼭 먹어야 했던 내 믿음과 습관을 180도 바꿔야 했다.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일단 해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5개월째 접어들고 있고 지금까지는 내 몸에 별다른 이상 증상 없이 잘 적응하고 있다.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았고, 전날 저녁에 먹은 식사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뇌를 속이고 있다.

살다 보면 변화가 필요한 때가 있다.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일 수도, 더 다정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서 일 수도, 나처럼 건강을 회복하고 싶어서 일 수도 있다.  나은 직장을 바라면 경험을 쌓거나 전문지식을 배워야 하고, 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면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건강을 되찾고 싶다면 식습관을 바꾸거나 꾸준히 운동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내 믿음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배움의 출발점은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 생각한다. 다르거나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보다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지금은 맞지만 시간이 지나면 틀렸을 수도 있다. 맞고 틀리고를 따지며 주저하고 있기보다 일단 시도하고 배워보는 게 원하는 걸 얻는 데 한 발 더 빨리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5개월 간의 단식이 틀렸을 수도 있다. 틀렸다는 것도 5개월 동안 시도해 봤기에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다른 방법을 배우고 시도해 보면서 나에게 맞는 걸 찾아가면 된다. 이미 한 번 시도해 봤기 때문에 두 번째 세 번째는 보다 더 쉽게 시도할 수 있을 거다. 그때도 내가 틀렸거나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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