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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23. 2021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

밥상머리에서 배운 인생

"보온 도시락을 하나 사야 할 것 같아."

"보온 도시락? 당신이 쓰려고?"

"아니 채윤이 돌봄 교실에서 당분간 급식이 안 된다고 도시락을 챙겨 오라고 연락 왔어."

"참~ 코로나 19가 하다 하다 이제 도시락까지 경험하게 하는구나."

"그러게 말이야. 급식밖에 모르던 애들이 도시락을 싸갈 줄은 누가 짐작이나 했겠어."

겨울 방학의 끝자락에 도시락을 싸게 될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1 학년인 둘째에겐 입학식도 없었고, 제대로 된 수업시간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나마 맞벌이 가정을 위한 돌봄 수업으로 1학년을 보낸 게 전부였다. 이제는 도시락까지 싸가는 경험까지 하게 된 거다. 4살 터울인 언니도 경험해보지 못한 도시락을.

아내의 아침 시간이 더 분주해졌다. 아이들 아침 식사 준비에 더해 도시락까지 싸야 했다. 급식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 도시락은 남다른 의미와 추억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아내는 먹다 남은 밥에 만들어 놓은 반찬으로 도시락을 쌀 수 없었다. 적은 양이지만 새 밥에 새 반찬, 국까지 만들어 담아줬다. 둘째는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다. 평소에도 입이 짧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빈 도시락으로 가지고 오는 걸 보면 엄마의 정성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2주 동안 챙기면서 아내도 적잖이 애쓴 것 같았다. 매일 다른 반찬을 담기 위해 고민의 연속이었다. 또 따뜻한 새 밥을 담아주기 위해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일련의 수고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끝났다.  아내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학생 때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기만 했지 내 자식을 위해, 급식이 당연한 요즘 도시락을 싸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새삼 엄마의 정성을 되새기게 되었다며 짧은 소감을 남겼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날부터 도시락을 싸갔다. 학년이 바뀌면서 친구들도 대부분 물갈이가 된다. 아는 친구보다 낯선 얼굴이 더 많아 어색한 정적이 흐르곤 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점심은 먹어야 했다. 삼삼오오 모이기보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싸 온 도시락을 먹었다. 자기 도시락 먹기도 바빠 내가 무얼 싸왔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지레 예민해져 있었다. 당시는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여길 때였다. 빠듯한 살림에 새로울 게 없는 반찬이 돌려 막기 식으로 담겨 있었지만 그마저도 매일 먹을 수 있어 다행인 때였다. 간혹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도시락을 못 싸 오는 친구가 있기도 했던 때였다. 

하루가 다르게 친해지면서 자연스레 도시락도 함께 먹게 된다. 몇 명 만 모여도 반찬가게 부럽지 않을 만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김치는 고정, 달걀말이는 쟁탈전을 치를 만큼 인기였다. 어묵 조림, 멸치 볶음, 각종 나물, 진미채, 콩자반, 분홍 소시지 등 우리 집에 있는 반찬이 친구들 집에도 당연히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간혹 햄이라는 걸 싸 오는 친구는 다르게 보였다. 스팸, 비엔나소시지, 프랑크 햄 종류는 내 도시락에선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친구들이 싸와도 먹어본 경험이 없어서 선뜻 손을 뻗지 못했었다. 누가 어떤 반찬을 싸 오든 도시락 때문에 친구를 무시하거나 창피를 주는 걸 경험해보진 못했다. 간혹 반찬이 그 집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척도가 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위화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새로운 반찬을 다 함께 나눠먹는 걸로 충분했다.    

아침을 거르고 등교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밥에 국, 반찬이 차려진 밥상을 매일 준비해 주셨던 것 같다. 간혹 밥 대신 빵을 먹기는 했지만 빈 속에 등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밥을 먹고 있으면 도시락 세 개가 순서대로 준비된다. 크기가 고만고만한 도시락에 같은 종류의 반찬이 양껏 담긴다. 밥과 반찬의 양도 황금비율이다. 가끔 귀한 반찬, 가령 분홍 소시지, 달걀말이, 불고기 등이 담길 때를 제외하고 밥을 다 먹으면 반찬도 같이 떨어지게 담겨 있었다. 굳이 개량하지 않아도 다년간 세 아들의 도시락을 싼 경험에서 나온 어머니 만의 특급 기술이었다. 큰 아들을 시작으로 막내인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장 16년이 걸렸고, 거의 매일 세 아들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어머니는 저녁밥을 먹을 때부터 다음 날 도시락 반찬을 고민했다. 저녁에 먹던 반찬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늘 새 반찬을 만들려고 했다. 새 반찬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늘 같은 반찬들이 관람차가 돌들 한 번씩 반찬통을 차지했었다. 2주 동안 아내의 도시락 반찬 고민을 옆에서 함께했다. 내가 먹고 싶은 걸 고르라면 그나마 쉽겠지만, 입이 짧은 아이를 감안해 고르자니 쉽지 않았다. 도시락 하나 싸는 데도 온갖 고민을 하게 되는 데 그 시절 세 아들의 도시락을 거침없이 싸 냈던 어머니의 노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직장인, 주부, 학생 가릴 것 없이 새벽 기상이 대세인 요즘이다.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를 실현 갈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일에 치이고, 가사에 녹초가 되어도 자기 계발을 위해 새벽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어머니는 당신의 목표보다 자식이 먼저였다. 어머니는 자기 계발이 아닌 가족의 밥을 먼저 챙기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시킨다고 16년을  하루같이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 세끼 라도 든든히 먹이고 싶은 부모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거다. 두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된 지금도 그때의 어머니를 감히 흉내 내지 못한다. 나라면 그 세월 동안 자신을 내려놓고 살지 못했을 거다. 

한 가지 분야에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적어도 1만 시간 이상을 필요로 한다. 1만 시간을 훌쩍 넘겨 16년 동안 이어진 어머니의 노력은 인정을 넘어 존경도 부족하다 생각한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 시간을 견뎌낸 게 아닐 거다. 마흔을 넘겨 새로운 일을 찾았고, 하루하루 정진하고 있는 요즘 꾸준함의 가치를 배워가고 있다. 내가 찾은 일에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10년을 투자해야 한다면 3년을 지나왔다. 3년을 하루처럼 같은 일상을 반복해 왔다.  어머니가 매일 세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기를 반복해 왔듯이. 지나온 시간보다 가야 할 시간이 더 많이 남았다. 남은 인생을 걸 만큼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어머니가 견뎌온 16년의 시간만큼은 견뎌내 봐야 하지 않을까. 다만 어머니와 나의 노력엔 차이가 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맹목적인 사랑으로 버텨낸 시간이었다면, 나는 가족을 지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의 가치를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어쩌면 그 시절 묵묵히 당신의 일을 아무런 대가 없이 살아 낸 어머니를 보고 자랐기에 받은 영향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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