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인턴을 하고 있지만 편입을 한터라 나보다 서너 살은 더 많은 언니가 꾸짖듯이 말했다.
상황은 이러했다.
내가 건축과 4학년이던 당시, 학교 실무수업 대신 연계된 설계사무소에서 학기 중에 인턴을 진행했다. 그런데 툭하면 야근에 주말근무까지 하는 바람에 일주일에 딱 두 번가는 학교 수업에 지장이 많았다. 수면부족으로 지각 아니면 수업시간에 졸기 일수였다.학생인지 직장인이지 모르겠다며담당교수님께 이 일을 하소연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교수회의 안건으로 올라가면서 문제가 커진 것이다.
그 후, 사무실에서는 인턴들에게 무리한 추가 근무는 시키지 말라며 가능한 정시퇴근 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고같이 인턴 중인 언니는 내덕에 거꾸로 눈치 보게 생겼다며 나에게 한소리 한 것이다.
아무리 아직 학위도 없는 학생이라지만 돈 한 푼 안 받고 야근에 특근까지 마구 시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취업을 위한 준비도 좋지만 나는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 수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불편한 날들이 이어졌다. 분명 상황은 나아졌는데 반대로 마음이 불편해진 것이다.
수업 대신 참여하는 이 인턴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느 순간 머릿속 회로가 덜커덕 바뀌면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지원했고 단 6명에게 주어진 기회를 얻어놓고 선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같은 학비를 내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독점하고 있는데 왜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는 분들께 고마워했던 적은 있었는가.
돈, 시간, 경험, 가치의 관점이 전환되면서 나머지 인턴기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내 생각이 바뀌기 전에도 후에도 불합리한 추가 근무는 없었기에 나에게는 행복한 결말이었다.
그 뒤로 나는 관점 바꾸기 연습에 돌입했다. 세상을 살면서 답답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인데 어떻게든 좋은 부분에 중점을 두면 세상이 한결 밝아진다.
내가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한밤 중 비양도
얼마 전 자정이 다되어 바닷가에 나갔었다. 한여름도 아닌지라 띄엄띄엄 차도에 가로등만 있을 뿐 칠흑 같은 어둠이 주변을 감쌌다.
멀리 보이는 불빛은 비양도의 가로등이요 고깃배들의 불이었다. 그것을 제외하고 하늘도 바다도 내가 서 있는 모래사장도 경계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구에는 하늘과 땅과 물의 경계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그렇다고 말했고 내가 그것이 경계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나는 고작 우주먼지에 불과하다는 말을 종종 되뇐다. 한번 왔다 가는 세상 너무 마음 졸이지 말고 편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