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의 입에 맛있는 것 넣어주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정이 넘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 건 아니다.
인간대 인간으로 정이 안 가면 그냥 딱 싫다. 입이 짧아 깨작거리는 사람에게 흥이 덜 나긴 해도 최소한 싫은 적은 없었다.
내키지 않는 이에겐 종이컵에 뜨거운 물 붓어 믹스커피 한잔 타주는 것도 천만년이 걸리는 느낌이다.억지로 예의 차리는 연기라도 하려면 진이 빠진다.
내가 이뻐라 하는 사람에게는 손 많이 가고 오래 걸리는 잡채, 김밥이며 라따뚜이, 라자냐 등 즐겁게 대접한다. 특히나 입에 맞다며 싹싹 그릇을 비우는 이들에겐 몇 번이고 얼마든지 흔쾌히 오케이다.기회가 된다면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어미새의 마음이다.
Photo by Sookyong Lee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조상들의 대처법이나 원수를 사랑하라던 예수의 말대로 이 시대에도 무한한 아량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지금껏 그리 살아보니 나는 그냥 허울 좋은 호구가 되어있더라.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기본예의조차 탑재해 본 적이 없는 이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는 꼭 지켜야 할 가르침은 아닌 것 같다.
적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지만 싫은 사람까지 끌어안아주는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내 소중한 에너지를 소비해 가면서 싫은 사람을 배려하고 싶지 않은 거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듬고 챙기기에도 벅찬 날들의연속이니 말이다.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을 다한다. 그래서 밥정이 갖는 힘을 믿는다. 외국에서 어린아이들을 돌보면서 김밥을 몇 번 싸줬었다. 몇 년이 지나 그 집을 다시 찾았을 때 내 이름은 기억 못 해도 김밥을 싸줬던 누나로 기억해 주니 너무도 고맙고 뿌듯했다. 그때 내 마음과 정성을 고스란히 받아먹고 쑥쑥 자란 느낌이랄까.